세계가 주목하는 윤여정의 ‘미나리’가 아름다운 이유

입력 2021-02-19 13:24 수정 2021-02-19 13:26
영화 '미나리'. 판씨네마 제공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미국 영화사가 제작하고 미국 국적 감독이 연출했다. 하지만 한국과 세계의 관심은 비상하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스티븐 연과 한국 배우 윤여정 한예리가 그린 한인 가정의 이야기가 미국 영화계에서 큰 호평을 얻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세계인의 시선을 끈 ‘미나리’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콥(스티븐 연)은 비옥한 땅을 일구겠다며 가족을 이끌고 남부 아칸소 시골에 자리를 잡는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허허벌판에 놓인 허름한 트레일러 집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 걱정이 앞서서다. 토네이도가 몰아치던 밤에는 트레일러를 두고 싸움도 벌어진다.

그러나 아직까진 잔잔하다. 서사적 탄력은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이 부부를 도우려 미국에 건너오면서 벌어진다. 그의 손에는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이 들려있다. 또 할머니 순자는 손주들을 앉혀놓고 화투를 가르친다. 데이비드는 못마땅하다. “할머니는 쿠키도 구울 줄 모르고 냄새가 나.”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가 않아.”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던 이민자 가정을 그린 영화는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데이비드가 정 감독 본인인 셈이다. 그래서 회상 자체에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가 깊이 담겨 있다. 영화는 한국전쟁 등 한국의 역사적 질곡을 두루 경험한 순자와 미국 문화가 더 익숙한 손주들을 번갈아 비추면서 타지에 자리 잡고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낯선 환경에서 갈등하다가도 서로 의지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는 비단 이민자만이 아니더라도 흔들리는 삶을 사는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될듯하다.

세련된 시퀀스와 음악도 백미다. 자연광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풍광과 오묘한 음악의 배치는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강조해야 하는 건 역시 영화의 타이틀인 나물 미나리다. 제이콥이 일군 한국 채소가 가족의 미래를 향한다면 괴팍한 할머니가 손수 가져와 물가에 심은 미나리는 지금 여기에 사는 이민자의 은유가 된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어. 약도 되고, 나물로 먹어도 되고, 찌개로 끓여도 맛있지.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순자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지닌 미나리는 척박한 토양에서 자신을 피워낸 모든 이민자를 향한 감독의 진심 어린 찬사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영화에서 순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진즉 눈치챘을 듯하다. 감독은 영화의 끝에 ‘우리의 모든 할머니에게’(TO OUR ALL GRANDMA)라는 헌사를 남겼다. 고약한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크고 깊은 사랑을 품고 있는 할머니 순자. 여기에 전형성을 탈피해 새로움을 덧입힌 배우 윤여정은 미국의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23개를 거머쥐며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룬 성취와 다양성을 품으려 하는 최근 미국 시상식 트렌드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4월 예정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는 여우조연상 외에도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영화는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국내에 처음 공개된 데 이어 다음 달 3일 정식 개봉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