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e스포츠 ‘쵸비’ 정지훈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르다. 소환사 주문과 특성은 물론, 자신이 1레벨에 찍는 스킬조차도 남들보다 많은 것을 계산해서 고른다. 18일 농심 레드포스전 2세트에서도 그의 꼼꼼함이 잘 드러났다.
정지훈은 레넥톤을, 맞상대 ‘베이’ 박준병은 세트를 골랐다. 정지훈은 첫 번째 웨이브가 도착하고도 한참 동안 1레벨 스킬을 찍지 않았다. 분노를 쉽게 쌓을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자 그제야 ‘무자비한 포식자(W)’를 찍었다. 패시브 ‘분노의 지배’를 활용한 강화 W 스킬로 강력하면서도 이기적인 딜 교환을 하기 위해서였다.
중계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1분45초경 레넥톤의 상태 창을 보면 분노가 절반가량 쌓이자마자 바로 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분노가 쌓이자마자 박준병에게 강화 W 스킬을 쓴 것으로 보인다. 박준병이 1레벨에 ‘강펀치(W)’를 찍었다는 걸 확인한 그는 강화 W의 보호막 파괴 효과 발동까지도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심의 1레벨 딜 교환은 정지훈의 예상보다 부족한 대미지를 냈다. 박준병의 ‘뼈 방패’ 룬이 발동되면서 정지훈이 시도한 콤보 대미지의 상당 부분이 뼈 방패에 흡수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약 20초 전쯤인 1분26초경 미드 아래쪽 부시에서 마주친 박준병과 기본공격을 주고받았다. 정지훈 본인의 뼈 방패도 이때 소모됐다. 뼈 방패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45초다. 정지훈은 상대방의 뼈 방패가 재사용 대기시간에 돌입했다고 판단하고 강화 W 콤보를 선택했다. 왜 1레벨 딜 교환 당시에 박준병의 뼈 방패가 발동했을까?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선 시간을 약 30초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53초경 ‘아서’ 박미르(탈리야)가 미드 위쪽 부시에서 튀어나와 박준병에게 ‘파편 난사(Q)’를 날렸다. 박준병의 뼈 방패는 이때 소모됐다. 사실 두 선수가 1분26초경 기본 공격을 교환했을 땐 정지훈의 뼈 방패만 빠졌던 것이다.
만약 1분26초경에 박준병의 뼈 방패가 함께 소모됐다면 정지훈은 1레벨 딜 교환에서 더 큰 재미를 봤을 것이다. 그는 상대 뼈 방패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기사는 정지훈의 복기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정지훈은 “당시에 분노를 잘 쌓았었다. 강화 W 스킬을 활용한 딜 교환이 좋겠다 싶어서 1레벨에 W 스킬을 찍었다. 그런데 탈리야가 앞서 상대방의 뼈 방패를 빼놓은 걸 계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엔 1레벨 때 ‘양떼 도륙(Q)’을 찍는 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플레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지훈 특유의 디테일은 이날 1세트에 아지르를 플레이하며 선택한 룬에서도 잘 드러났다. 정지훈이 아지르를 플레이할 때 ‘지배’ 특성을 선호한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는 ‘피의 맛’과 ‘굶주린 사냥꾼’ 룬을 활용한 딜 교환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이날은 세트를 공략하기 위해 ‘정밀’ 특성의 ‘치명적 속도’를 핵심 룬으로 선택했다.
정밀 특성에 있는 ‘전설: 강인함’ 룬의 효과가 필요해서였다. 정지훈은 “강인함 룬이 없으면 세트의 점멸+‘안면 강타(E)’ 콤보를 맞았을 때 제 궁극기로 반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 팀에 (수면 스킬을 갖춘) 릴리아도 있어서 더 강인함 룬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감전’ 룬의 효과로는 세트를 공략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다. 정지훈은 “세트는 감전 룬의 대미지를 못 느끼다시피 하는 챔피언이다. 치명적 속도를 활용해 세트를 많이 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