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부터 전국 CGV 40개관에는 뮤지컬 영화가 아닌 공연 실황을 담은 작품 한편이 선보인다. 서울예술단 창작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다. 이 작품은 단순히 라이브 공연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영상화를 목적에 두고 9대의 4K 카메라를 이용해 만든 스크린용 수작이다. 영상에서는 배우들이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거나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본격화로 무대가 좁아지면서 공연계는 새 활로를 모색했다. 온라인 공연이다. 하지만 기존 온라인 공연은 그저 공연 실황을 멀리서 찍은 것을 옮기는 데 그치곤 했다. 공들여 찍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며 보는 온라인 공연은 집중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시장에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한 스크린이 공연 유료 영상화의 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팩션 사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버무려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순항했으나 코로나19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아쉽게도 일찍 막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치지 않고 극장 개봉이라는 새 플랫폼을 개척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 마련된 시사회에서 공개된 공연 실황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카메라는 적절히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멀리 있는 배우들을 오버랩하면서 서사를 풀어낸다. 명성황후와 고종, 그리고 흥선대원군 3인의 갈등을 부각한 교차편집도 두드러졌다. 특히 공연장이나 그간 공연 실황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미세한 움직임과 작은 소리까지 포착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온라인 공연과는 달리 영화관에서 집중하며 본다는 점이 극 관람에 큰 집중력을 부여한다.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스크린을 찾는 공연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창작플랫폼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과 ‘올해의 레퍼토리’ 공연 6편을 전국 CGV 13개 상영관에서 상영한다. 5월 말까지 진행되는 ‘아르코 라이브’다.
올해 선정작은 뮤지컬 ‘시데레우스(올해의 레퍼토리)’,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올해의 레퍼토리)’, 연극 ‘깐느로 가는 길(올해의 신작)’, 전통예술 ‘신(新) 심방곡(올해의 신작)’, 무용 ‘고요한 순환(올해의 신작)’,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올해의 신작)’이다. 이미 지난 11일부터 ‘시데레우스’가 2주 간의 상영을 시작했다. ‘아르코 라이브’ 역시 극장용 영상제작을 위해 4K 카메라, 지미집, 무인카메라 등 첨단 영상장비를 동원했다.
최근 신작이 적어 관객몰이에 어려움을 겪는 영화관들도 공연의 스크린 도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스크린용 영상 제작은 최신식 영상장비와 음향 장비 등이 동원돼야 해 민간 등 소자본 공연들엔 그림의 떡과도 같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꼽힌다. ‘잃어버린 1895’ 장성희 극작가는 “이번 공연은 제3의 장르라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예술단이 공공의 측면에서 내놓은 실험”이라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