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430만가구 ‘대정전’… 이상기후가 전력시스템 초과

입력 2021-02-17 17:41 수정 2021-02-17 18:22
이례적인 폭설이 내린 텍사스에서 한 시민이 눈을 치우고 있다. AP연합뉴스

겨울 폭풍을 몰고 온 북극발 맹추위에 미국 전역에서 최소 23명이 숨지고 55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 본토의 4분의 3이 기록적 폭설에 눈으로 뒤덮였고, 주민 2억명에게 겨울폭풍 경보가 발령됐다. 한파를 예측하지 못했던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특히 피해가 컸다.

CNN방송은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 자료를 인용해 본토 48개 주(州) 전체 면적의 73%에 눈이 쌓였다고 보도했다. 2003년 이후 가장 넓은 지역에 눈이 내린 것으로 눈이 내리지 않은 지역은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3개 주에 불과했다. 미 기상청은 맹추위가 오는 2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2억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겨울폭풍 경보를 발령했다.

특히 이번 한파는 눈 구경을 하기 힘든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아칸소 등 남부 지방까지 덮쳤다. 미 기상청에 따르면 텍사스와 아칸소의 일부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한 곳인 알래스카주 페어뱅크스(영하 16도)보다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중부 지방의 콜로라도주 유마와 켄자스주 노턴에는 각각 영하 41도, 영하 31도의 살인적 강추위가 들이닥쳤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일주일 동안 미 전역 500여곳에서 최저기온 기록이 깨졌다고 분석했다.

인명 피해도 이어졌다. NYT에 따르면 이번 한파로 지금까지 최소 23명이 숨졌다. 갑자기 엄습한 추위 탓에 난방 수요가 늘면서 유독 가스 중독 사고가 다수 발생했고, 빙판길 차량 사고도 속출했다. 동사자도 나왔다.

난방 수요 폭증으로 발전 시설이 멈춰서면서 대규모 정전사태도 초래됐다. 총 18개 주 550만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특히 텍사스주에선 430만가구가 정전돼 가장 피해가 컸다. 오리건과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에서도 각각 10만 가구 이상이 정전 피해를 봤다.

텍사스주의 정전 피해가 유독 컸던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가 텍사스 전력회사들의 이번 겨울 전력수요 예측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남부 지역인 텍사스의 경우 기후가 온난해 통상 겨울보다는 무더운 여름에 전력수요가 많고 전력 공급 체계도 이 점을 고려해 짜여져 있다. 하지만 예상 밖의 한파에 수많은 가구들이 낡고 효율이 떨어지는 전기히터를 틀어댔고 지난 14일 저녁 전력수요는 폭증했다. 텍사스 전력회사들도 겨울철 드물게 추위가 찾아오면 전력 수요가 폭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14일 수요 폭증은 전력회사들의 예측조차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한파 대비에 소홀했던 발전소들은 잇따라 가동을 멈췄고 정전 피해는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텍사스주의 독자 전력망 시스템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의 광역 전력망을 통해 여러 주가 필요에 따라 전기를 주고 받지만 텍사스는 연방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독자 전력망을 쓰고 있다.

NYT는 “텍사스주의 독자적 전력망 시스템은 최악의 상황에도 견디도록 설계됐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이 시스템을 한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혹한 자체가 기후변화의 영향 탓이라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덩어리인 극 소용돌이는 평소 제트기류의 영향을 받아 북극권에 갇혀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냉기를 품은 극소용돌이가 방해 없이 남하할 수 있게 됐다. 기상학자 브랜든 밀러는 “이번 한파는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며 “북극이 지구 나머지 지역보다 2배 빨리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