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동해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일대에서 붙잡힌 북한 남성은 일명 ‘머구리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헤엄쳐 건너온 것으로 드러났다. 군은 감시장비를 통해 이 남성을 여러 차례 포착했으나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눈 뜨고 당한’ 셈이 됐다.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우리 군이 어제(16일) 동해 민통선 북방에서 신병을 확보한 인원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했다”며 “해상을 통해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와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대 초반의 이 북한 남성이 입고 온 잠수복은 주로 어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입는 머구리 잠수복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잠수복 종류와 남성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남성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남성은 조사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은 “현재까지 해당부대 해안경계작전과 경계 시설물 관리에 대해 확인한 결과, 해당 인원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우리 군 감시장비에 몇 차례 포착되었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배수로 차단시설이 미흡했던 점을 확인했다”며 경계 실패를 자인했다.
통상 접경지역에선 군 감시장비에 신원 미상의 인원이 포착되면 군은 신병 확보를 위한 작전에 바로 나서야 한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남성은 16일 새벽 4시20분쯤 GOP에서 5㎞ 정도 떨어진 고성군 민통선 검문소 폐쇄회로TV에 포착됐고, 군은 대침투 경계령 최고수준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해 ‘5분 대기조’ 병력까지 투입했지만 3시간이 지난 오전 7시 20분에야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또 이 남성이 해안철책 하단의 차단시설이 훼손된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지난해 7월 인천 강화도에서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탈북민 사건 이후에도 대북 경계 시스템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은 이 사건 당시 배수로 같은 경계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과오를 확인했고, 접경지 배수로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합참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지상작전사령부와 합동으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후속대책을 마련하여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했다. 해안 경계·감시망이 뚫린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사단장 등 해당 부대의 대대적인 문책이 예상된다.
사건이 발생한 부대는 지난해 11월 ‘기계체조 선수’와 같은 몸놀림으로 철책을 가뿐히 넘은 것으로 조사된 이른바 ‘철책 귀순’과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한 일명 ‘노크 귀순’이 있었던 육군 22사단 관할 지역이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