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설이 제기됐던 2019년 교황청 영토 내에서 열린 가톨릭 단체행사에 북한 고위 외교관들이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북한 외교관의 종교 행사 참석은 이례적인 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프란치스코 교황 초청 의지가 그만큼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는 14일 웹진 ‘피렌체의 식탁’ 기고문을 통해 2019년 2월 10일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교황청 산하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Sant’Egidio)’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이 열렸고, 리셉션에서 김일성 배지를 단 김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와 서기관을 만났다고 전했다. 이 전 대사는 당시 김 대사대리와 만나 “서로 통성명을 하고, 환담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적극 호응한 뒤 이뤄졌다.
비슷한 시기 조선중앙통신은 2018년 12월 산테지디오의 임팔리아초 회장 일행이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환담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임팔리아초 회장 일행이 김영남 외에도 임천일 외무성 부상과 평양외국어대 교수와 학생 등을 만났고 장충성당(가톨릭)과 정백성당(러시아 정교회) 등을 둘러봤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대사는 “북한의 정부수반(김영남)까지 나서 산테지디오 회장을 이렇게 환대해 주고 이를 대외에 공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그는 북한이 임팔리아초 회장에게 산테지디오의 평양사무소 개설을 타진했던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대사는 “산테지디오가 2018년 12월 북한 당국으로부터 평양사무소 설치를 제안을 받은 바 있다”면서 사무소를 설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사실상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사는 북한이 가톨릭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심을 보인 또 다른 이례적인 사례로 북한 종교협회가 2018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탄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꼽았다. 그는 이런 사례들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가 굉장히 컸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사는 교황 방북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의 연관성과 관련해 “교황 방북은 특정 종교 지도자의 행차가 아니다”며 “만약 교황이 북한 땅을 밟게 된다면, 그것은 북한 개방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또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중요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미 관계 개선의 키를 쥐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 당사자인 문 대통령도 만나게 된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겠는가”라며 “교황은 이 기회를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라 생각하고 두 지도자와의 대화를 통해 좋은 중재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