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투자협정 비준 노리는 중국… 지렛대는 포르투갈

입력 2021-02-15 18:11 수정 2021-02-15 18:26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 지난해 12월 30일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 중국과 EU는 이날 회의에서 7년간 협상해온 포괄적투자협정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포괄적투자협정(CAI) 체결에 합의한 중국이 포르투갈을 지렛대 삼아 유럽의회 비준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다. 독일에 이어 올해 EU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은 포르투갈은 유럽 국가 중에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5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장밍 EU 주재 중국대사는 “포르투갈이 EU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가능한 한 빨리 회원국들에 협정 비준에 관한 검토를 마칠 것을 독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또 “포르투갈은 중국과 가까운 친구”라며 “중국과 포르투갈의 관계는 양자 관계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르투갈이 1999년 마카오를 중국에 이양할 때 양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던 상황을 윈윈 협력 관계의 전형으로 평가한 것이다.

SCMP는 “중국이 투자협정의 EU 비준을 위해 포르투갈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EU는 지난해 12월 30일 7년을 협상해온 포괄적투자협정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EU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 교역 파트너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협정은 EU 27개 회원국과 중국이 개별적으로 맺은 24개 이상의 상호 투자 조약을 대체하게 된다.

유럽 기업들은 이번 협정을 통해 중국의 외국 기업에 대한 인허가 요건을 낮추고 특정 분야의 외국인 소유 제한 등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정이 발효되면 유럽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보다 유리한 투자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협정이 발효되려면 EU 27개 회원국과 EU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협정을 실제 체결하고 시행하기까지는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의 인권 탄압 문제, 홍콩 자치권 침해 문제 등을 이유로 협정 비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이 국제 노동기준을 준수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친중 성향인 포르투갈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협정 비준을 마무리하고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포르투갈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43억6000만달러(약 4조8000억원)로 미국(12억6000만달러)의 세 배가 넘었다. 미국은 포르투갈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일 베이징에서 중·동부 유럽(CEEC) 17개 국가와의 경제협력 추진 기구인 '17+1'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럽과의 관계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9일 열린 중·동부 유럽(CEEC) 17개 국가와의 경제협력 기구인 ‘17+1’ 화상 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 백신 지원과 교역량 확대를 약속했다. 시 주석은 앞으로 5년간 1700억 달러(약 187조3000억원) 이상의 상품을 중·동부 유럽국으로부터 수입하고 농산물 수입액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중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간 협력은 다자주의의 실천이며 중·유럽 관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강조했다. 정상회의에 참여한 중·동부 유럽 국가 중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12개국은 EU 회원국이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