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 들어온 미래… SBS ‘AI vs 인간’의 의미

입력 2021-02-15 18:05
이하 SBS 제공

“우리는 다시 찾아온 개화기 앞에 서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고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외면하지 말고 변화의 흐름을 타고 미래로 가야 한다.” SBS가 신년 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5부작)에 9개월을 투자한 이유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김상욱의 말에서 방향성을 알 수 있다. “AI(인공지능)와 인간의 공존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AI vs 인간’은 AI와 인간의 최고수가 세기의 진검 승부를 펼치는 국내 최초 AI쇼다. 지난달 29일부터 14일까지 5부작으로 이어졌다. AI 기술을 집약해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폭넓게 조명하며 기술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남상문 PD는 ‘공생’을 강조했다. “2016년 알파고 대결 당시 공포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AI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기는 감정 같았죠. 2021년의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보려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AI와 함께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위험 요소가 있다면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1화의 반향은 고(故) 김광석의 음성이 흘러나온 예고편부터 거셌다. 김광석 AI와 옥주현이 함께 부르는 김광진의 ‘편지’ 듀엣 무대가 예고돼서다. 해당 영상이 유튜브에서 80만회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본 방송에서는 인간과 모창 AI의 노래 대결이 펼쳐졌다. AI가 노래를 습득하는 과정은 말을 못 하는 어린아이가 노래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했다. 옥주현의 음성을 10만번 학습한 AI의 ‘흰 수염고래’ 무대가 끝난 후 스튜디오는 숙연해졌다. 놀랍도록 똑같았다. 작사가 김이나는 “들숨까지 따라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까지 그대로 해냈다”고 평가했다. 개발자는 “습관도 따라 한다”고 말했다. 결과는 45대 8로 옥주현의 승리였다. 옥주현은 “발음의 디테일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감정과 발음 안의 공간감을 구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오남용에 관한 문제도 짚었다. 황광희는 “보이스피싱처럼 나쁜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자들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특정인의 목소리를 복제하는 것이 아닌 고인의 목소리를 부활시키는 기술로 활용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이 불렀는지 AI가 불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함께 개발 중”이라며 “오남용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화에서 골프 AI 엘드릭은 박세리를 만났다. 첫 번째 라운드는 롱 드라이브 대결에서는 박세리가 압승을 거뒀고, 홀인원 대결에서는 엘드릭이 우세했다. 마지막 퍼팅 대결은 팽팽했다. 결국 엘드릭이 승기를 쥐었다.

엘드릭의 몸값은 6억원으로 대결이 목적인 AI는 아니다. 골프 교육을 목적으로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이 자신을 복제한 AI를 보며 복기하고 슬럼프를 극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김상욱은 “냉장고나 세탁기는 100년 전에 들어왔다. 이들이 하는 일은 2300년 전 하인들이 했던 일이다. 인간의 일자리를 뺏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며 “분명 AI는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생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3화 심리 인식 AI는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해 폭발물을 운반하려다 탐지견에 적발된 인물을 가려내는 미션을 받았다. 대결자는 프로파일러 권일용이었다. 방송에서 공개된 진짜 범인은 2번. 인간과 AI가 지목한 인물도 동일하게 2번이었다. 권일용은 “2번은 불필요한 답변과 지나치게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심리 인식 AI는 “의심 인물은 공격성, 긴장, 불안, 스트레스가 높아지는데 2번 실험맨은 미션을 받은 직후 의심도 수치가 가장 높았다”고 했다.

AI가 범죄 현장에 투입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부작용도 꼼꼼하게 담았다. AI의 잘못된 판단으로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김상욱은 “반드시 통제돼야 하는 기술”이라며 “AI가 프로파일러와 비슷한 예측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판결은 인간이 개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일용은 “AI와 인간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4화 주식 투자 대결에서는 인간이 압승을 거뒀다. 대결에는 100만원을 10년 만에 70억으로 불린 전설의 슈퍼 개미 마하 세븐이 참여했다. 대결은 총 4주에 걸쳐 진행됐다. 첫째 주에서 AI가 우세했으나 2주 차에 들어서며 판도가 바뀌었다. 마하 세븐은 잃으면 크게 잃고 벌면 크게 벌면서 점점 수익률을 올렸다. AI는 조금씩 수익률이 하락했다.

격차가 벌어지자 개발자들은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대결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대결 마지막 주, 국내외 주식 시장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코스피 2300선이 붕괴했다. 승자는 인간이었다. 마하 세븐은 “시장이 하락하더라도 AI가 리스크 관리가 된다는 측면에서 놀랐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 김동환은 “주식 시장에서 AI가 성장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사람의 펀드 운용, 주식 투자의 도움을 주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화에는 작곡 AI와 인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참여한 AI는 단 10초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클래식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트로트 작곡에 도전했다. 인간 대결자는 3분 작곡가 김도일이었다.

두 곡이 공개되자 전현무는 “다 좋아서 인간에게 희망이자 불안한 점인 것 같다”며 “어떻게 AI가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놀랍다. 복잡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김이나는 “인간의 마음을 더 긁는 것이 인간의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가 만든 곡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 곡을 모두 불러본 의뢰인은 김도일의 곡을 선택했다. 개발자는 “AI라는 존재가 인간과 어떻게 협업을 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이 얼마나 큰 지를 알린 것 같아 의미 있었다”고 전했다. 김상욱은 “창작 AI는 예술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넓혀줄 것”이라며 “사진기의 발명으로 미술가들이 사진과 같은 정교한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지만 그 외에 여러 장르의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디오 몽타주 AI 기술의 놀라움도 담겼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6초 만에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인간의 목소리와 얼굴 골격에는 관계가 있고, 닮은 사람들은 목소리가 비슷할 것이라는 가설이 전제된 기술이다. 개발자는 “유일한 단서가 목소리일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간의 보조 역할만 하더라도 만족한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