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선수들의 학교 폭력(학폭)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학창시절 흥국생명 이재영-이다영(이상 25), OK금융그룹 송명근(28)-심경섭(30)의 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이 폭로에 나서면서다. 여론은 선수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징계를 요구하고 있고, 추가 폭로도 꼬리를 물면서 학폭 문제가 불거진 전례가 없던 배구계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지난 13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추가 폭로 글이 올라왔다. 글을 작성한 A씨는 “그 둘은 틈만 나면 욕하고 툭툭 쳤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땐 부모님께 말해 (다른 선수들이) 단체로 혼나게 했다”며 “함께 생활할 수 없어 1년 반 만에 옆 산을 통해서 도망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두 자매의 학폭 논란은 지난 10일 B씨 등 4명이 피해 사실을 밝히며 공론화 됐다. 이재영-이다영이 폭력 사실을 인정한 뒤 자필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A씨는 ‘차분히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흥국생명의 입장을 인용하며 “조용히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거라면 당시 일이 계속 폭로될 것”이라며 “전 재산을 다 줘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해당 게시물 댓글을 통해선 근영여중 뿐 아니라 선명여고에서의 학폭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남자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송명근-심경섭의 폭행으로 고등학교 시절 고환 봉합수술까지 받아야 했다고 13일 폭로한 피해자 C씨는 같은날 OK금융그룹이 발표한 사과문을 지적하는 내용을 폭로 글에 추가했다. C씨는 “사과문엔 본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섞여 있었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재차 요구했다.
배구계는 혼란스러운 반응이다. 프로야구의 경우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2018년 지명된 신인 안우진에 대한 학폭 폭로가 이어지자 구단에서 정규시즌 5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3년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며 사실상 국가대표로 뛸 수 없게 했다. 이번이 첫 사례인 배구는 명문화된 징계 근거나 처벌 전례가 없어 각 주체들 간 대응 방식이 엇갈리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빠른 징계’도 동반되지 않고 있다.
OK금융그룹은 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사과가 우선이란 판단에 학폭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OK금융그룹 관계자는 “징계에 대해선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온 피해자에게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다면 어떤 조치든 할 수 있단 입장”이라고 말했다. 구단 조치와는 별개로 송명근은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숙하는 의미로 내일 이후의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게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라며 “감독님을 통해 구단 허락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먼저 폭로가 터졌던 흥국생명은 연휴 내내 학폭 문제의 엄중함과 여론의 요구를 고려해 선수들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선수 징계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V-리그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국가대표팀을 담당하는 대한배구협회는 구단 조치를 고려해 대응을 논의한단 방침이다. 협회 관계자는 “도쿄올림픽을 망칠 수는 없는데, 간단치 않은 문제라 저희도 난감한 상태”라며 “회장님을 비롯해 협회 수뇌부들이 신중하게 여론을 경청하고 구단-KOVO의 조치를 지켜본 뒤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