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게 된 도시 일용직 근로자의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되는 평균 근무일수를 기존의 22일이 아닌 18일로 줄인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회 환경과 문화의 변화로 일용직 근로자 역시 근무시간이 줄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부장판사 이종광)는 수술 후유증이 생긴 A씨가 의사와 병원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하면서 1심보다 배상액을 낮게 산정했다고 14일 밝혔다. 1심은 의사와 병원 측이 A씨에게 7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7100여만원으로 낮춰 잡았다.
A씨는 2014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무릎관절염 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과실로 신경을 다쳤다. 그 결과로 A씨는 근육이 약화돼 발목을 들거나 발등을 몸쪽으로 당기지 못하는 ‘족하수’라는 후유증을 갖게 됐다. 이에 A씨는 2017년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 쟁점은 A씨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장래 벌 수 있었을 ‘일실수입’의 산정 기준이었다. 일실수입은 피해자의 증상, 직업, 은퇴할 때까지 남은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한다. 그간 법원은 근로자의 평균 월간 가동 일수(근로일)를 22일로 잡고 일실수입을 계산해왔다. A씨는 수술 당시 50대 무직자로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노임 기준이 적용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종전 관례와 달리 월간 가동 일수를 18일로 새롭게 산정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는 선진화되고 레저산업이 발달돼 근로자들도 종전처럼 일과 수입에만 매여 있지 않고 생활의 여유를 즐기려는 추세”라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월간 가동 일수(근로일)가 22일이라는 기준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주5일 근무로 변경됐고, 2013년에는 대체공휴일이 신설되는 등 근로일이 줄고 공휴일이 증가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는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일수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회환경과 근로조건의 변화”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