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정주행③-런 온] 신세경과 미주의 순간들

입력 2021-02-14 06:00
배우 신세경. 나무엑터스 제공

오롯이 혼자인 삶을 산 미주(신세경)가 영화 번역을 시작한 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 처음 갔던 극장이 미주는 왠지 좋았다. 불 꺼진 영화관의 어둠은 공평한 것 같았으니까. ‘나 혼자만 깜깜한 게 아니었구나.’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자막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개체 같았달까.

그래서 번역가가 됐다. 매일을 해석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 온갖 시련과 편견이 보호 종료 아동인 미주를 향했다. 사회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헝클어진 삶이 이어졌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무례를 받아치고, 무시를 거부했다. 할 말은 하는, 반성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단단히 쌓아 올린 미주의 순간들을 신세경에게 들어봤다.

'런 온' 속 신세경의 모습. JTBC 캡처

최근 종영한 ‘런 온’은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로맨스 드라마다. ‘지극히 현실적인 2030의 이야기’로 통하며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었다. 신세경은 1998년 서태지 ‘Take 5’ 포스터 모델로 데뷔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올린 후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현재는 구독자 119만명을 거느린 유튜브 ‘신세경 sjkuksee’를 운영한다.

다음은 신세경 인터뷰 일문일답

Q. 클리셰를 깬 보호 종료 아동이었다.
“우리 드라마에는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가 늘 가득했어요. 항상 뻔하지 않은 방향으로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말을 하곤 했죠. 주인공의 불우한 성장 배경은 우리가 많이 본 설정이지만 미주가 살아가는 방식은 달랐어요. 미주는 솔직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연기를 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Q. 동정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하던 칼 같은 미주가 선겸(임시완)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감정이 폭발한 장면이 있었나.
“미주가 살아온 환경을 두고 매이(이봉련)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종종 등장해요. 그때도 ‘내가 고생하며 힘들게 자랐다는 걸 알아달라’는 의도는 0.1g도 담지 않았어요. 미주는 동정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니까요. 의연하던 미주가 12부에서 기정도(박영규) 의원에게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선겸에게 포기하겠단 말을 전할 때,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왔던 결핍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배우 신세경. 나무엑터스 제공

Q. 미주의 인기 비결은.
“사과를 잘한다는 점이에요. 미주는 방금 뱉은 모난 말에 대해서도 바로 사과할 줄 아는 멋쟁이죠.(웃음) 물론 배배 꼬아 말할 때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자신의 일을 무척 사랑한다는 점도 좋고요.”

Q. 미주가 지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뭘까.
“서로를 잘 지켜가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정말 건강하게 느껴졌어요.”

Q. 신세경과 미주는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른가.
“저는 고민이 많아서 감정을 드러낼 때 많이 주저해요. 하지만 미주는 거침이 없죠. 비슷한 점도 많아요. 미주는 ‘맞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도 그렇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Q. 2화 포장마차 장면에서 영상 속 포근한 분위기와 달리 비가 많이 왔다던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방영 전 편집실에 놀러 가서 처음 봤을 때의 두근거림이 잊히지 않아요. 화면상으로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여유 있고 몽글몽글해 보이지만, 막상 촬영 때는 느닷없이 내리는 비를 피하며 급히 찍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대사량도 많고, 중요한 장면이라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썸 타는 남녀의 설렘이 그대로 담겨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술 취한 선겸을 혼자 두고 잠시 사라졌던 미주가 다시 나타날 때, 그런 선겸의 시야 안으로 운동화를 신은 미주의 발이 한 발짝 걸어 들어오는데 너무 반가워서 비명을 지를 뻔했어요.”

Q. 특히 명대사가 많았던 작품이었다.
“14부에서 지우(차화연) 언니가 기정도를 향해 “내 인생 네 소품 아니야. 내 인생 주인공은 나야”라고 말하던 모습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멋졌어요.”

Q. ‘런 온’이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길 바라나.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현실적인 연애의 단계들을 잘 표현해서 그 설렘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서로 맞닿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시청자가 작은 위로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런 온’을 통해 대중에게 신세경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정말 어려운 질문이라 잘 모르겠네요. 하하. 내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란다기보다는 미주라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선겸과 투덕거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배우 신세경. 나무엑터스 제공

Q. 미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즌2 기다릴게! 보일 때까지 끝까지!”

Q.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매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게 주어지는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올해는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마스크 벗고 친구들도 만나고, 야외에서 운동도 하고 싶어요. 개인적인 소망은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싶어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