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이형이랑 보드게임하며 혹독했던 獨 생활 버텼죠”

입력 2021-02-09 06:00 수정 2021-02-09 06:00
3일 제주 서귀포시의 대전 숙소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한 서영재의 모습. 서귀포=이동환 기자

“(이)재성이 형이랑은 1년 내내 붙어있었죠. 킬은 독일에서도 시골이라 쉴 땐 재성이 형이 좋아하는 루미큐브, 빙고 같은 보드게임을 같이 했어요. 심지어 원정 경기 가서도 공책에 선을 긋고 빙고를 했죠.”

3일 제주 서귀포의 프로축구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 전지훈련 숙소에서 만난 서영재(26)는 독일 분데스리가2 홀슈타인 킬에서 뛰던 시절을 독일 무대에 도전한 혹독했던 5년의 시간 중 그나마 가장 안정됐던 시기로 기억했다. 현재 킬의 에이스급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선배 이재성과 함께 의지하고 이재성 모친이 해주는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먹으며 타향살이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영재는 “독일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너무 반가웠고, 특히 대부분 국가대표여서 신기한 점도 있었다”며 “재성이 형은 킬에 합류한 첫 날 함께 훈련하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잘해서 놀랐고, 그 뒤 한 달 동안 ‘형은 발에 본드를 붙인 줄 알았다’고 말해 형이 그만하라고 제지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혹독하고 외로웠던 독일 도전
함부르크 시절 서영재. 함부르크 트위터 캡처

한양대 재학 시절 함부르크 SV를 통해 독일에 진출한 서영재는 5년 동안 도합 17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함부르크에선 1군에 올라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장·감독 교체나 무릎 부상 등 악재가 겹쳤다. 힘들게 1군에 올라간 뒤엔 이유를 듣지도 못한 채 벤치에만 앉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MSV 뒤스부르크로 이적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군에서 프로 데뷔를 하긴 했지만 단 8경기만 뛰었을 정도로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독일 무대 마지막 팀인 킬에서도, 서영재는 감독 교체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서영재가 해외 적응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것도 아니다. 활발하고 ‘까불까불한’ 성격인 서영재는 팀 동료들과 최대한 어울리려 했다고 한다. 뒤스부르크 시잘 팀 동료였던 일류첸코(전북)의 한국 진출 당시 조언을 건네고 현재까지도 연락을 이어갈 정도. 심지어 경기에 투입되지 못할 땐 감독을 찾아가 명단에서 제외한 이유를 캐물을 정도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뒤스부르크 시절 서영재의 모습. 뒤스부르크 트위터 캡처

서영재는 “10~20분 정도 선수들과 재밌게 이야기하다가도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 중요한 얘기를 할 땐 저를 빼놓고 했다”며 “뒤스부르크 시절엔 토르스텐 리버크네흐트 감독을 찾아가 이유 없이 명단에서 뺀 이유를 묻다가 서로 막말하고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했다”고 상기했다.

하지만 어렸던 서영재는 결국 문화·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서영재는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 독일 문화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축구만 잘 한다고 경기에 나갈 순 없다. 코치·감독과의 관계도 중시하고 대화도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서영재는 독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 사카이 고토쿠(빗셀 고베)를 꼽았다. 같은 아시아인인 고토쿠도 독일어를 하지 못했지만 결국 함부르크에서 주장 완장까지 차는 등 팀 내 적응에 성공했다고 한다. 서영재는 “고토쿠는 실력도 좋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등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선수였다”며 “같은 아시아인 선배라 따로 불러 모르는 걸 많이 가르쳐주기도 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떠올렸다. 이어 “독일에서 고생을 많이 해 여태까지 (유럽 무대에) 도전했던 선배님들이 경기력 적으로 잘 했든 못 했든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대전에서 여는 축구인생 2막
킬 시절 서영재(가운데)와 이재성. 킬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에 간다고 하니 재성이형이 친구들도 많을 텐데 외로움 없이 이제 재밌게 축구하라고 하더라고요.”

서영재는 지난 시즌 중반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가족이 있고 언어가 통하는 곳, 애정을 기울이며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코칭스태프들이 함께 하는 곳이다. “유럽 도전은 할 만큼 다 해봐서 이젠 축구 외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는 한국에서 계속 축구하고 싶다”는 서영재의 말처럼, 부모님도 이제 매주 아들이 경기에 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만족스러워한다고 한다. 지난 시즌 서영재는 독일 생활 중 뛰었던 경기 수와 거의 맞먹는 15경기에 출장했다.

올 시즌은 ‘K리거’ 서영재에게 도약의 해다. 새로 부임한 이민성 감독 밑에서 서영재는 큰 기대를 받으며 부주장직까지 맡게 됐다. 플레이 측면에서도 주전 왼쪽 풀백으로서 장점인 공격능력 뿐 아니라 수비 능력의 보완도 요구받고 있다. 서영재는 “감독님이 수비수 출신이라 아무래도 작은 것 하나하나 설명하고 고칠 점을 지적해주신다”며 “많이 혼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관심이 감사하고 수비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지훈련에 임하고 있는 서영재(가운데)와 서영재가 '가장 잘 맞는다'고 표현한 박인혁(왼쪽)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 감독은 빠른 공수전환과 모든 선수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 서영재가 ‘지옥 같았다’고 떠올린 강력한 체력훈련도 버텨야 했다. 전술훈련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귀포 2차 전지훈련도 기본적으로 훈련량이 많아 여전히 힘들게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서영재는 국가대표까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인데 독일에서 힘든 생활을 결국 버텨내지 못해 아쉬웠다”며 “머물러 있지 않게 하기 위해 수비 위치 선정이나 어떤 타이밍에 공격으로 나가야 하는지 등 노하우를 많이 주입시켜 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대전은 오는 28일 부천 FC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2021시즌 일정을 시작한다. 서영재는 올 시즌을 ‘성장’의 한 해로 삼는다는 각오다. 그는 “전지훈련 중에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며 “올해는 (주전으로) 풀 시즌을 뛰는 첫 해인데 시즌 끝나고 많이 성장한 느낌을 받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롤모델은 홍철(울산)이다. 서영재는 “스타일이 저랑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갖고 있는 무기가 확실한 점이 부럽다”며 “홍철 선수의 크로스 능력을 갖고 싶어 영상을 많이 보면서 배우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공격포인트를 4~5개 올리는 게 목표”라며 “2021년을 선수로서도, 정신적으로도 업그레이드 되는 한 해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