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체결을 주도하는 등 냉전 종식에 기여한 조지 슐츠 전 미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싱크탱크 후버연구소는 7일자 부고를 통해 슐츠 전 장관이 스탠퍼드대 캠퍼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슐츠 전 장관은 최근까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 겸 후버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해왔다.
1920년 뉴욕 태생인 슐츠 전 장관은 1949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산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와 시카코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1969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노동장관으로 입각했다. 닉슨 행정부에서 백악관 예산관리국장과 재무장관을 지낸 그는 1982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미국 역사에서 장관급 직책 네 개를 역임한 사람은 엘리엇 리처드슨과 더불어 단 둘뿐이다.
슐츠 전 장관은 6년6개월 간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며 구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미·소 군사 대결이 극심하던 당시에도 구소련 측 카운터파트였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외교장관과 물밑 접촉을 이어가며 긴장 완화를 위해 힘썼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미·소 양측은 사거리 500~5500㎞인 중거리 미사일 보유 금지를 골자로 하는 INF를 체결하기에 이른다.
슐츠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레이건 행정부를 장악한 강경파와 적잖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구소련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슐츠 전 장관을 대놓고 비웃었다고 한다. 나중에 슐츠 전 장관은 “강경파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며 “그들은 완전히 틀렸다”고 회고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적지 않다. 1983년 레이건 전 대통령 방한을 수행하는 등 여러 차례 방한한 경험이 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국면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강경 진압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