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욕심 내려놓은 2년차 감독 김남일의 겨울

입력 2021-02-08 06:00
김남일 성남 FC 감독이 5일 동계훈련 중인 부산 기장 훈련장에서 선수단을 바라보고 있다. 성남 FC 제공

김남일(43) 성남 FC 감독은 ‘내려놓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변함없이 시원하고 막힘없는 ‘상남자’스런 말투였지만, 골라 쓰는 단어마다 그간 고민 많았던 속내가 묻어났다. 올해는 의욕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결과를 내고 싶다고, 팬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가 프로구단 지도자로서 데뷔 시즌 천당과 지옥을 거치며 짧은 시간에도 배운 게 많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성남 선수단과 부산 기장으로 내려가 두 번째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국민일보와 통화한 5일에도 김 감독은 막 선수들과 팀 미팅을 마친 뒤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강조하는 포지셔닝과 오프더볼 움직임에서 선수들의 이해도가 지난해보다 많이 올라왔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도 검증됐고 경험 있는 선수들”이라면서 “지난해보다 준비 상태는 더 좋아진 것 같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현실에 두 발 디딘 ‘남일볼’

김남일 성남 FC 감독이 5일 동계훈련 중인 부산 기장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남 FC 제공

지난해 김 감독의 데뷔 시즌은 문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시즌 초반 화려한 전술로 연승하며 돋보였지만 기세가 오래가지 않았다. 부진 끝에 강등 경쟁에 몰리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물론 감격스러운 잔류였지만 강등 경쟁 자체가 감독으로서 꿈꿨던 것일 리 만무하다. 그는 “지난해는 첫해다 보니 의욕이 앞섰다. 자신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독이 됐다”면서 “팀 색깔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에게 무리하게 요구를 한 부분도 있었다”고 복기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목표를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으로 삼았다. 얼핏 너무 소박한 목표 아닌가 싶지만 힘든 시즌을 겪은 고민의 산물이다. 그는 “현실에 맞게 목표를 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목표를 높게 잡을 순 있지만 오히려 그게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욕을 지나치게 내보이기보다는 조용하게 현실에 발을 디딘, 견실한 결과를 내놓고 싶다는 뜻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감독으로서 배운 점으로 ‘선수 구성’과 ‘변수 대처’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여러 공부도 하고 경험도 했지만 선수 구성을 어떻게 해서 경기를 나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경험했다”면서 “경기 중 발생하는 변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경험했기에 올해는 결정도 훨씬 심사숙고해서 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해보다는 교활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와 별개로 성남이 지난 시즌 보여준 전술적 역량은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은 전술 색깔 자체는 올 시즌도 유지할 계획이다. 김 감독은 “큰 틀에서 많이 바꾸지는 않을 생각이다. 스타일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가져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도 만들어가는 과정, 내용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자평하며 “부족했던 걸 동계훈련에서 채우고 있다. 더 좋은 축구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치르는 시험

김남일 성남 FC 감독이 5일 동계훈련 중인 부산 기장 훈련장에서 선수단을 바라보고 있다. 성남 FC 제공

지난 시즌 성남의 잔류에 결정적 공헌을 한 이들 중 하나는 시즌 도중 임대로 데려온 국가대표 공격수 나상호였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며 공격에 좀체 방점을 찍지 못하던 성남은 그의 활약으로 여러 번 경기를 결정짓고 뒤집었다. 나상호는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FC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넉넉지 않은 구단 재정상 붙들기는 어려웠다. 김 감독은 “상호(나상호)를 붙잡고 싶었지만 무리였다”면서 “설득을 위해 뭔가를 제시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고, 본인 의사도 있어 존중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으로서는 나상호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치러야 할 시험 중 하나다. 외국인 공격수를 새로 둘 뽑은 건 이를 위한 포석이다. 다만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르비아 장신 공격수 뮬리치는 자가격리 끝에 5일 저녁에야 팀에 합류했다. 루마니아 연령별 대표 출신 세르지우 부쉬는 아직 자가격리 중이다. 김 감독은 “초반에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호흡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최대한 리스크를 줄일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기존 선수단에도 더 나은 활약을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데뷔골로 팀을 구해낸 유망주 홍시후, 그 골에 도움을 줬던 주장 서보민이 여기 포함된다. 김 감독은 “시후(홍시후)는 지난해도 좋은 활약을 했지만 올해는 더 자신감에 차 있다. 여유가 생겼다”고 칭찬했다. 서보민을 향해서도 “지난해 (부상으로) 오래 빠져 아쉬웠다. 막판 경기 뛴 것도 사실 무리였지만 제 역할을 해줬다”면서 “지난해 못한 걸 올해 보여주려 하고 있다. 덕분에 팀이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봤다.

성남은 올 시즌 첫 경기를 남기일 감독이 이끄는 승격팀 제주 유나이티드와 치른다. 남 감독이 김 감독 부임 전까지 성남을 이끈 걸 따지면 얄궂은 대진이다. 김 감독은 “제주는 득점도 많지만 수비도 단단한 팀”이라면서 “남 감독은 자신이 가르쳐본 우리 선수들 파악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는 “100%까지는 아니지만 제주가 어떤 축구를 하는지 인지하고 있다”면서 “전략을 잘 짜야 될 듯하다. 여러 계획을 갖고 준비하려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고마운 팬과 가족, 선배들
김남일 성남 FC 감독의 아내 김보민 아나운서가 지난해 10월 31일 시즌 마지막 경기 부산 아이파크전을 지켜본 뒤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 김보민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캡쳐.

김 감독의 아내 김보민 아나운서는 잔류가 결정된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직관하러 아들과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남편이 고생 끝에 기쁨의 눈물을 쏟는 장면도 지켜봤다. 김 감독은 “(마음고생 할까 봐) 제가 그 경기 오지 말라고 했다”고 웃었다. 그는 “감독을 하고서 아내가 제 눈치를 많이 본다. (감독 일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사실 많이 미안하다”면서 “선수 시절 (아내가) 힘든 상황도 많이 겪어 면역이 있다. 힘들 때 오히려 옆에서 조언도 해주고 용기도 준다”고 고마워했다.

지난해 울산 현대에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일군 김도훈 감독도 고마운 사람이다. 함께 프로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사석에서 형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분이 깊다. 김 감독은 “형님(김도훈 감독)에게 지난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힘들 때마다 전화도 자주 해주고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도 많이 알려줬다”면서 “덕분에 지난해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ACL 우승 때 당연히 축하 전화도 했다”고 말했다.

코치로 프로팀과 국가대표팀에서 보좌했던 최용수, 신태용 감독에게도 배운 게 있다. 그는 “두 분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면서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형님 리더십으로 굉장히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고 최용수 감독은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두 분의 성향을 반반 가져가려 한다”면서 “선수들이 경기장 나갈 때 편안한 심리상태로 나가게 하려 한다. 되도록 말수를 줄이고 중요한 부분을 감독으로서 잡아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진한 성적 탓에 퇴진 걸개까지 건 성남 팬들에게 김 감독은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는 “(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자극과 동기부여가 됐다”면서 “다만 너무 심하게만 말아달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 감독은 “팬들이 원하는 걸 100% 이루긴 어렵겠지만 결과를 가져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겠다”면서 “지난해 같은 경험을 하지 않게 단단히 준비하겠다. 마지막에 맘 졸이지 않고 편히 경기 보실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