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문과 가혹행위에 못 이겨 허위로 살인을 자백해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2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곽병수)는 4일 강도살인 피의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후 모범수로 출소한 최인철(60)·장동익(63) 씨가 제기한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강도살인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씨에 대해서는 공무원 사칭과 공갈, 무면허운전 등에 대해 일부 유죄를 인정해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일관성 있는 진술과 당시 수감된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불법체포와 불법 구금이 있었고,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 및 가혹 행위가 인정된다”면서 “고문과 가혹 행위로 이뤄진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거나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낙동강 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 변 갈대숲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인근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여직원 박모씨의 시신으로, 경찰은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당시 낙동강 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여러 사건의 범인이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해 미제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1년 11월 8일 부산 사하경찰서는 최씨 등은 경찰 사칭 및 현금 갈취 등의 혐의로 임의동행해 조사하면서 이들로부터 살인사건의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들은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를 차량으로 납치해 여성은 성폭행 후 각목으로 구타한 뒤 돌멩이로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했으며 남성은 탈출했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1992년 8월 부산지법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를 거쳤지만, 1993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꼬박 21년을 복역했다. 2013년 모범수로 특별감형돼 출소한 두 사람은 “경찰에서 고문과 허위자백이 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어 두 사람은 2014년 8월, 2015년 7월, 2016년 1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 등에 DNA 검사와 경찰수사관 6명의 인적사항 공개 등을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은 것은 당시 이들의 무죄를 확신하고 백방으로 뛰던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이어서다. 문 대통령은 이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17년 5월8일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018년 7월 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해 2019년 4월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과 이를 검증하지 않은 검찰의 부실 수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날 재심 재판부는 선고 후 피고인들에게 사죄했다. 곽병수 부장판사는 “경찰에서 가혹행위와 제출된 증거가 법원에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그로 인해 21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하는 고통을 안겼다”며 “가족과 당사자들이 고통을 겪게 된 데 대해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변호인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고소 등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