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미나리’ 무시, 시대 착오” 美언론서 비난 봇물

입력 2021-02-04 11:28 수정 2021-02-04 13:43
'미나리'를 미국 영화라고 표기했음에도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한 골든글로브.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제78회 골든글로브상에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영화 ‘미나리’가 작품상 후보가 아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에 미국에서는 곧장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 후보작을 발표하며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렸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리 아이작(정이삭)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1980년 미 아칸소주(州)로 이주해 농장을 일구며 사는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윤여정과 한예리가 출연해 국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다.

미국인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HFPA가 바보같이 보이게 됐다”며 비판했다.

NYT는 “리 아이작 정은 미국인 감독이고, 이 영화는 미국에서 촬영됐으며, 미국 회사가 자금을 지원했다”며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민자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어영화 후보로 경쟁해야만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게 되면 “최고의 상(작품상)을 노려볼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HFPA는 외국어 영화는 다른 부분 후보작에 모두 오를 수 있으나 작품상(드라마 및 뮤지컬·코미디 부문) 후보작에는 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미나리’ 출연진이 배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배우 후보 지명도 받을 만했는데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나리' 공식 포스터. 판시네마 제공

‘미나리’가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은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구별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미나리’는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돼 있어 이 규정을 따라야 했다.

해당 규정으로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국에서는 곧장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미국인 감독이 연출했고 미국인 배우가 출연했으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미국 영화사 ‘플랜B’가 제작한 영화를 외국어 영화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타임도 후보작 발표 직후 ‘11개의 가장 이상한 골든글로브 후보들-그리고 그 대신 후보에 올랐어야 하는 것’이란 기사에서 HFPA의 이번 선택을 “지난해 영화 산업을 굴복시킨 유행병조차도 완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명백하고 당황스러운 무시가 많았다”며 ‘미나리’ 제외를 예로 들었다.

기사는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외에 어떤 부문에도 들지 못했다. 정이삭 감독의 절묘하고 담담한 각본, 반짝반짝 빛났던 베테랑 배우 윤여정의 가장 역할이 어떤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음을 뜻한다”고 했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도 지난해 ‘기생충’에 작품상 등 4관왕을 안긴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를 비교하며, “‘미나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골든글로브 규정보다 더 낫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는 “골든글러브가 후보작 명단에 영화의 출신 국가를 써놓으면서 상황은 훨씬 더 희극적으로 됐다”고 비꼬았다. 골든글로브는 공식 사이트에서 ‘미나리’를 미국 영화라고 표기하면서도 외국어영화로 분류했다.

연예전문지 엔터테인먼트도 “더 큰 충격은 여우조연상 부문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여겨졌던 윤여정이 조디 포스터의 깜짝 지명을 위해 빠졌다는 것”이라고 보도하며 윤여정이 후보에 오르지 않은 것에 의문을 표했다.

이난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