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한계 다다른 농식품부의 ‘가축 살처분’ 공식

입력 2021-02-04 07:30

“확산을 막으려면 살처분은 불가피합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방역 당국에서는 어김없이 이 말이 나온다. 이 발언 이후로는 전염병 발생 농장에서 반경 3㎞ 이내 모든 농장에서 가축이 사라진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바이러스 숙주를 제거해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 동안 ‘살처분=예방’ 공식은 언제나 유효했다. 축산차량 등 사람이 매개체가 돼 무작위로 ‘수평 전파’를 유발하는 상황에서는 전염 가능성이 있는 모든 농장을 살처분하는 게 정답이었다. 예방 수단이 부재하다보니 피해 확산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과할 정도의 대응’이 차라리 낫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여기에 기술이 더해졌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수년에 걸쳐 업그레이드한 가축방역통합정보시스템(KAHIS)은 수평 전파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6만1000여대의 축산 차량에 대한 실시간 통제가 이뤄진다. 축산차량이 축산질병 발생 농장 반경 3㎞까지 접근하면 경고음이 울리고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다.

경험에 의거한 살처분 조치에 최신 예방 시스템까지 갖춘 결과는 어떨까. 올해만 본다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3일 기준 85건의 확진 사례가 나왔고 2535만1000마리의 가금류가 땅에 묻혔다. 살처분 마릿수로 보면 최악의 해로 꼽혔던 2016~2017년(3807만6000마리) 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예방 시스템 덕분에 사람에 의한 AI 수평 전파 사례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살처분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예방적 살처분은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의문이다.


주변 농장에서 끊임없이 확진 사례가 나오는데도 감염되지 않은 경기 화성시 산안마을 사례는 이 의문을 곱씹게 만든다. 해당 농장은 반경 3㎞라는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오른 지 44일이 지났다. 산안마을 관계자들은 보상도 필요없으니 산란계들을 죽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가 녹아 있다. 반복되는 검사에도 양성 판정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화성시에 “예외는 없다”며 살처분을 압박하고 있다. 산안마을 관계자는 3일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농식품부가 살처분만 고집하기 보다는 AI 확산세 속에도 왜 안 걸리는 농장이 있나를 고민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 멀쩡한 주변 사람을 잠재적 숙주로 매도해 죽이는 일은 없지 않은가.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기 보다는 품이 좀 더 들더라도 대안을 찾는 자세를 보일 때다. 생명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