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뷔 앞둔 이민성 대전 감독 “리버풀 축구 구현하는 게 꿈”

입력 2021-02-03 16:39 수정 2021-02-03 16:43
이민성 감독이 3일 제주 서귀포의 대전 숙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한 뒤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버풀 축구를 재밌게 봤고, 클롭 감독을 좋아해요. 완벽히 쫓아갈 순 없겠지만 그런 팀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모든 선수가 전방 압박에 가담해 공수 전반에 기여하는 유기적인 축구로 세계 축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프로축구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에 새로 부임한 이민성(48)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도 이와 같다. 굳건한 수비와 공-수 밸런스를 기반으로 한 빠른 전환이 이뤄지는 스피드 축구다.

이를 그라운드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타이밍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야 스피드가 살 수 있다. ‘이민성 축구’의 모든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이 감독은 부임 뒤 체력훈련 전문가 길레미 혼돈(39·브라질) 피지컬 코치를 영입했고, 대전 선수들은 지난달 경남 거제 1차 전지훈련 내내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3일 제주 서귀포시의 대전 숙소에서 만난 이 감독은 이에 대해 “축구는 뛰어야 한다는 확신엔 흔들림이 없다”며 “몸이 힘들다고 느끼면 기술은 발휘될 기회도 없다”고 설명했다.

서귀포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2차 전지훈련은 본격적으로 이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다. 레전드 수비수 출신 감독답게 수비 전술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엔 더 큰 공을 들인다. 부주장인 풀백 서영재는 “비디오 미팅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들까지 개선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고칠 점들을 짚어주신다”며 “수비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느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실전 연습경기를 통해 이처럼 많은 훈련량이 소기의 성과로 확인되고 있다. 전날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선 주전이 나선 전반을 1실점으로 막아냈고, 빠른 공수전환이 이뤄졌단 평가를 받았다.

‘초보 감독’임에도 이처럼 명쾌한 철학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10년 동안의 오랜 코치 생활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광저우 헝다, 강원 FC, 올림픽대표팀 등을 거치며 여러 명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그들의 노하우를 직간접적으로 체득했다. 이 감독은 “외국인 감독이 살아남기 힘든 중국 땅에서 이장수 감독님이 구단-선수의 신뢰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며 “김학범 감독님께는 치밀하게 공부해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외적으로 단단히 밀고 나가는 신념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이민성 감독이 2일 제주 서귀포의 강창학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대표팀과의 연습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대전은 지난 시즌 하나금융그룹의 인수로 재창단한 뒤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승격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아쉬운 경기력을 노출하며 최종 4위로 승격에 실패했다. 후반 중반 이후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 탓에 역전승 경기도 잘 없었고, 평균연령이 낮은 선수들의 기복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감독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적임자로 대전의 낙점을 받았다.

“코치는 부분만 보면 됐지만, 감독은 전체를 보고 하나하나 챙겨야 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아직 익숙지 않은 감독직이지만, 이 감독은 그만큼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감독은 “훈련장, 경기장에선 타협 없이 엄하게 다그치지만 훈련이 끝나면 편하게 선수들에게 먼저 장난치고 다가가려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1997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일본을 침몰시키는 역전골을 넣어 ‘도쿄대첩’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2002년엔 전국민을 들썩이게 만든 월드컵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A매치 기록만 67경기(2골)에 달할 정도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다시 대중 앞에 나서게 된 게 부담도 될 법 하지만, 그는 자신 있다. “저희는 무조건 승격입니다. 다른 게 필요 없어요. 무조건 승격.” 올 시즌 목표를 묻자 이 감독은 지체 없이 ‘승격’이란 단어를 반복했다.

전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은 ‘2002년 멤버’로서 책임감도 있다고 한다. 홍명보(울산 현대), 설기현(경남 FC), 김남일(성남 FC) 감독, 이영표 대표이사(강원), 박지성 어드바이저(전북) 등 2002년 멤버들은 최근 1~2년 사이 K리그 현장에서 지도자와 행정가로 활발히 활동을 시작한 상태다. 이 감독은 “2002년 축구 붐을 일으켰던 것처럼 지도자·행정가 길로 접어든 현재 다시 한 번 K리그의 붐을 일으키는 게 저희를 계속 응원해주셨던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며 “리그·컵대회에서 2002년 멤버를 만나게 된다면 정말 재밌는 경기를 보여드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민성 감독과 대전은 28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부천 FC와의 K리그2 1라운드 경기를 통해 장대한 한 시즌의 첫 발을 뗀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