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이 수조원씩 사들여도 밀리는 코스피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는 몇 천억원만 사도 급등하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순매수를 이어가는 개인투자자들의 강한 ‘먹성’에 외국인이나 기관이 되살 수 있는 주식이 줄면서 작은 매수세에도 주가가 크게 튀는 현상을 빚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개인은 외국인·기관이 쏟아내는 대규모 순매도 물량을 그대로 소화해버리는 데다 일단 사면 좀처럼 팔지 않는 이른바 ‘존버’(끈질기게 버티기)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유통 가능한 주식의 희소가치를 높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올 들어 2일까지 코스피 시장의 일일 투자자별 매매현황과 지수 등락률을 보면 개인이 1조원 넘게 대량 매수를 한 날에는 지수가 최대 3%대까지도 급락한 반면 순매수 규모가 1조원 미만임에도 외국인·기관이 산 날에는 2% 넘게 상승하는 일이 빈번했다.
개인이 4조2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지난달 26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2.14% 하락했고 각각 1조9000억원, 1조7000억원을 사들인 같은 달 28일과 29일에도 하락폭이 1.71%, 3.03%로 컸다. 2조1000억원 상당을 순매수한 지난달 15일 역시 2.03% 빠졌다. 개인 순매수로는 사상 최대인 4조5000억원을 사들인 그달 11일에도 코스피는 약세(–0.12%)를 면치 못했다. 개인은 다음날에도 2조3000억원어치를 사들였지만 코스피는 0.71% 하락했다.
이와 달리 외국인·기관이 함께 각각 4500억원, 6500억원을 순매수한 지난달 5일과 25일 지수는 1.57%, 2.18% 상승했다. 급락했던 코스피가 2.70% 반등하며 다시 3000선을 회복한 전날에도 외국인·기관 순매수액은 8200억원 수준으로 역시 1조원에 못 미쳤다. 지수가 3096.81로 전날보다 1.32% 오른 이날도 외국인의 ‘나홀로 순매수’ 규모는 1900억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기관과 외국인, 그중에서도 특히 외국인의 매수·매도 시 수급 영향력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들이 대규모로 팔 때 급락하는 코스피가 살 때는 적은 순매수 규모로도 급등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된 걸까.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하락하는 데 있어서는 외국인의 역대급 순매도가 있었다면 반등 시에는 외국인, 기관의 1조원 미만 순매수만으로도 가능한 상황”이라며 “이처럼 상승, 하락 시 수급 영향력이 크게 다른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지속된 대량 순매수로 물량잠식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인들이 많은 주식을 사들인 결과 외국인이 살 수 있는 주식 수가 줄고, 그로 인해 적은 매수 규모에도 주가가 크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본격적인 증시 폭락이 시작된 지난해 3월부터 이날까지 11개월간 코스피에서 개인은 59조5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기관과 외국인은 각각 34조9000억원, 26조5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주식 수로는 개인이 19억8900만주를 매집했고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9억6200만주, 8억2800만주를 처분했다.
지난해부터 주식시장에 유입된 개인 상당수가 단기매매에 주력하는 전업투자자들과 달리 장기 보유를 목적으로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물량잠식 효과를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이들이 삼성전자 현대차 네이버 같은 대형 주도주를 주로 사들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대형주가 전례 없이 급등하는 현상도 납득 가능하다. 투매에 가까운 기관·외국인의 대규모 매도를 개인이 모두 받아낸 만큼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물량도 크게 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기관이 연기금을 중심으로 연일 매도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그날그날의 코스피 향방은 외국인의 수급이 결정짓는 분위기다. 외국인 혼자 1조6000억원을 순매수한 지난달 8일 코스피는 3.97% 급등하며 처음으로 3150을 돌파했고, 3600억원을 산 그달 22일에는 1.49% 상승하며 첫 3160 고지에 도달했다.
개인 혼자 대량 매수에 나서는 날은 코스피가 약세를 보이지만 개인 매수세에 외국인이 조금이라도 가세하거나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크지 않은 날은 코스피가 대체로 강세로 마감했다. 개인 1조원 순매수에 외국인이 800억원을 사들인 지난 4일 코스피는 2.47% 상승했다. 지난 14일에는 기관이 1조4000억원을 팔았지만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7100억원, 6700억원을 사면서 강보합(0.05%)으로 선방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