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감독, 박민우 주변 어슬렁… 질책보다 힘이 센 재치

입력 2021-02-02 15:37 수정 2021-02-02 15:40
NC 다이노스 2루수 박민우(오른쪽)가 2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도중 이동욱(가운데) 감독이 다가오자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다. 창원=김철오 기자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 팀에 부담을 안긴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분명한 제 잘못이 맞습니다. 팬들에게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NC 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28)가 스프링캠프 훈련장 한쪽 담장 너머의 취재진 앞에서 최근 자신의 SNS 발언 논란을 사과할 때 다섯 걸음쯤 뒤에서 훈련을 지켜보며 방망이를 쥐고 선 이동욱(47) 감독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아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요.” 박민우와 인터뷰하는 기자들, 그 자리에 동석한 구단 직원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박민우도 멋쩍게 웃었다. 이 감독은 박민우의 말이 이어지자 구단 직원에게 “뭐래? 뭐라고 했어?”라며 발언 하나하나를 되물었다.

마치 ‘검열’하는 척 하면서 박민우에게 좁혀가는 이 감독의 거리. 그 좁아진 거리가 어쩌면 선수단 안에서 더 이상 박민우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고 ‘신흥 왕조’를 이룩할 NC의 올 시즌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묵언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박민우는 NC 스프링캠프 이틀째인 2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좋지 않은 일로 팬과 구단에 실망을 드렸다. 특히 SK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민우는 NC의 창단 멤버다. NC의 1군 합류 전인 2012년 입단해 이적 없이 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6경기에서 161안타(8홈런) 63타점 82득점 타율 0.345를 기록해 NC의 창단 첫 KBO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탠 2루수, 그리고 지난해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였다.

그래서 지난 27일 박민우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발언은 팬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박민우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통해 ‘어차피 구단이 갑이지, 차라리 이마트가 낫지, 아무도 모르지’라는 문구를 담은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이를 놓고 연봉 협상과 관련한 불만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다른 구단을 치켜세운 듯한 발언도 팬들에게 지적을 받았다. ‘이마트가 낫다’는 말은 NC 팬들에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구단 매각으로 혼란을 겪을 SK 선수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박민우는 이튿날 인스타그램에 “전날 새벽 지인과 다이렉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부끄럽지만, 당시엔 당혹감과 억울함이 커 빠르게 사과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NC 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가 2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창원=김철오 기자

박민우가 이날 취재진 앞에 선 이유도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박민우는 “지금은 무슨 말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 인터뷰를 하기에 조심스러웠다. 자숙한 뒤 말씀을 드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는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사과하고 시즌을 준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SNS 발언을 놓고 박민우를 질책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민우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도중 이 감독과 모바일 메시지를 주고받은 일화를 소개하며 “당시 우승 감독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는 2연패 감독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