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리는 45세에 늦깍이로 영국 왕실예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76세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하는 신진작가에 뽑혔고, 현재 세계 3대 갤러리인 데이비드 즈워너의 전속 작가로 있다.
와일리의 회화는 낙서 그림 같다. 얼핏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는 거리의 스프레이 회화에서 출발하는 저항과 분노가 근저에 깔려 있다. 이와 달리 와일리의 그림은 어린 시절 소녀들이 공책에 그리던 낙서 그림처럼 밝고 경쾌하다. 원근법이나 입체감을 무시하고 선과 색으로만 단순하게 표현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입체파의 그림처럼 파격적이다.
우리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미술 공식을 파괴하는 기발한 상상력이다. ‘가위 소녀’에서 소녀는 가뿐히 뛰어오르는데 가위의 날처럼 날렵하게 발을 일자로 벌리고 있다. 춤추는 소녀들에게서는 그저 선 몇 개 그려 넣을 뿐인데, 햇살처럼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와일리는 축구팬이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훗스퍼 FC 팬인 그가 토트넘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을 그린 작품도 최초로 공개된다. 축구장의 푸른 잔디밭, 수영장 등 일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봄비 같은 활력은 준다. 3월 28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