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에도 신고 못해요”… 신고자 10명 중 9명 불이익

입력 2021-01-31 16:47

직장인 여성 A씨는 얼마 전 직장 상사 B씨가 퇴근 후 본인의 자취방까지 몰래 찾아와 스토킹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평소 회식자리에서 A씨의 신체를 더듬으며 성추행을 일삼던 인물이었다. A씨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사건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신입사원 여성 C씨는 첫 출근일에 직장 상사 D씨로부터 “오빠라 부르라”는 요구를 받았다. 업무 중 머리를 쓰다듬는 등 D씨의 모욕적 행동이 지속되자 C씨는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여직원들이 같은 이유로 퇴사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31일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받은 성희롱 제보 가운데 신원과 피해내용이 확인된 364건을 분석한 결과 위계에 의한 성희롱은 324건(89%)에 달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10명 가운데 9명은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의미다. 성희롱과 함께 갑질을 당한 사례도 250건(68.7%)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여성이 83.2%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신고로 이어진 사례는 136건(37.4%)에 불과했다. 오히려 신고 후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123건(90.4%)이나 됐다. 72건(58.5%)의 피해자들은 회사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징계나 해고 조치를 받았다. 조치의무위반 사업장 사례도 51건(41.5%)으로 분석됐다. 신고를 접수하고도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직장갑질119 측은 “현행법에는 피해 구제에 관한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라며 “직장의 민주화와 고용 형태 간 차별 해소,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법 해석·집행, 사용자 책임 강화 등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