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숨!” 여행가방 감금당한 9살의 마지막 외마디

입력 2021-01-29 14:01
성모(41)씨. 뉴시스

‘천안 9살 여행가방 감금 사망’ 사건 가해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보다 무거운 징역 25년을 선고한 가운데 피해 아동이 당한 학대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안기고 있다.

사건 당일이었던 지난해 6월 1일. 고작 9살이었던 A군의 하루는 악몽보다 끔찍했다. 아침에 일어나 짜장라면을 조금 먹었을 뿐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못했다. 내내 굶던 아이 앞에 펼쳐진 건 가로 50㎝·세로 71.5㎝·폭 29㎝ 크기 여행용 가방이었다.

친부의 동거녀 성모(41)씨를 A군은 ‘엄마’라고 불러왔다. 성씨는 ‘훈육을 해야겠다’는 이유로 A군을 여행가방 안에 들어가게 한 뒤 지퍼를 잠갔다. 그 상태로 지인과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던 성씨는 옆에 있던 자신의 친자녀 2명에게 “(A군이) 가방에서 나오는지 잘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A군 역시 가방 안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성씨는 가방 안 A군의 상태를 살폈다. 3시간가량 좁은 가방 속에 갇혔던 아이는 그 안에서 용변을 봐야 했고 잔뜩 지친 모습이었다. 성씨는 가로 44㎝·세로 60㎝·폭 24㎝의 더 작은 가방을 꺼내와 A군에게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A군이) 안에 들어가 고개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허벅지를 가슴에 붙인 자세를 취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로 그 가방이다.

끔찍하고 악랄한 학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성씨는 자신의 친자녀와 함께 A군이 누워있는 가방 위에 올라 뛰었다. A군의 몸무게는 23㎏에 불과했고 그 위를 누르던 무게는 160㎏ 정도였다. 성씨는 또 A군이 실밥을 뜯어내 만든 숨구멍을 테이프로 막았다. 드라이기를 가져와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기도 했다. 그렇게 4시간이 더 지났다. 약 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A군은 정신을 잃기 전 울며 “아, 숨!”이라고 외쳤다.

9살 피해아동 A군을 추모하는 공간. 뉴시스

성씨는 29일 항소심 법정에 서서 “살인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자신의 죄책을 한정한 것이다. 성씨 측은 “진정으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면 친자녀들을 가방에 오르게 하는 등 범행에 가담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동학대치사죄라 하더라도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뒤 “아동학대치사라면 친자녀를 가담할 수 있게 한다는 식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어 “피고인은 친자녀에게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며 “피해자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5년형을 내렸다. 이어 “우리 사회는 이 사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 범행은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악랄하고 잔인하다”며 “재판부 구성원 역시 인간으로서,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사건 검토 내내 괴로웠다”고 덧붙였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