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SK가 반도체 소재업체 실트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이 회사에게 갈 이익을 부당하게 가져갔는지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상반기 중 결론지을 예정이다. 이에 비해 현대차가 최근 세계적 로봇기업을 인수하면서 정의선 회장에게 유용한 사업기회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조사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공정거래법 상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 중 사업기회 제공행위다. 쉽게 말해 회사가 수행할 수 있는 유망한 사업기회를 총수일가가 부당하게 가져갔다는 것이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SK실트론 사건
SK는 2017년 LG실트론을 1조원에 인수했다. 회사가 70.6% 지분을 인수하고 나머지 29.4%는 최 회장이 취득했다. 당시 최 회장은 금융회사가 세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신종금융기법인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통해 자신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분을 가져왔다. 향후 SK실트론이 상장하면 최 회장은 해당 지분에 따른 수익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계약방식이다.
공정위가 주목하는 것은 TRS계약 방식이다. TRS는 파생 금융 상품의 하나로 금융회사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입하고, 이에 따른 차익이나 손실은 계약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대신 약정 이자를 받는 거래다. 최 회장은 실트론 인수 과정에서 연간 90억원 가량을 이자를 SPC에 제공하는 대신 향후 이에 따른 수익 또는 손실을 자신이 가져가는 구조다.
공정위는 2018년 4월 효성이 조현준 회장 개인회사 격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가 경영난에 빠지자 TRS 계약을 활용해 조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과징금 30억원과 함께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SK가 TRS계약을 활용해 총수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수법이 효성 건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은 28일 효성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30억원 과징금 등 처분취소 소송에서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사업기회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2018년 8월 SK실트론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서면조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계약방식 등 ‘심증’은 있지만 최 회장에게 이익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내부자 진술 등 ‘물증’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SK는 대형로펌 ‘지평’을 대리인으로 삼고 공정위 결정에 대비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당시 최 회장은 보고펀드 등 채권단이 주도한 공개입찰에 참여해 실트론 지분을 취득했을 뿐”이라며 “중국 자본 참여 가능성이 불거지자 책임경영 차원에서 재무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상적 인수 항변하는 현대차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면서 60%는 현대차 등 법인이, 20%는 정 회장이 인수했다. 외형상 회사와 총수가 지분을 나눠 인수하는 SK실트론 사건과 닮은 꼴이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차의 인수발표 직후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가 80%를 전부 인수하지 않고 일부를 정 회장 개인이 인수하도록 한 것은 현대차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혐의로 볼 소지가 있다며 현대차에 이에 대한 소명을 요청했다.
현대차 측은 최근 경제개혁연대 질의에 대한 답변을 보내왔다. 현대차는 일단 정 회장의 지분 인수 목적은 사업상 목적이라고 답했다. 당초 현대차는 지분의 3분의 2정도만 원했는데 소프트뱅크가 80%를 팔길 원했고, 그 비는 부분을 정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또 별도안건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이사회에서 회사기회유용 여부를 논의했고 정 회장 참석없이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경제개혁연대 답변서에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SK의 실트론 인수와의 차별성도 언급한다. 실트론은 웨이퍼 등 SK계열사인 하이닉스와 직접 관련성 있는 제품을 만들지만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아 완성된 제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위 역시 조사 착수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보스턴다이나믹스가 해외법인이란 특수성 때문이다. 해외법인은 일감몰아주기 제재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 현대차가 현재 적자상태인 기업을 인수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상 회사 기회 유용 위법성 사유인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되는 사업’ 여부도 현재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날 “보스턴다이나믹스가 해외기업이기 때문에 정보가 제한돼 있다”면서 “현대차의 주장을 100% 신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SK실트론 건은 상반기 중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며 “SK실트론 사건 결론에 따라 현대차 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조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