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가의 성경 묵상] 창업하며 만난 하나님

입력 2021-01-28 16:04
창세기 1~11장을 ‘원역사’라 부른다. 원역사에서 인간은 세 번 타락한다.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열매를 먹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들과 통혼을 했으며, 창조주의 위상에 도전하는 바벨탑을 쌓았다. 그 결과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났고, 홍수를 경험했으며, 언어가 갈라졌다.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그 첫째는 광야로 나간 것이고, 둘째는 낯선 자를 환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비즈니스 세계에 적용해봤다.

첫째,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을 만났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

수년 전 사업차 두바이로 출장을 갔다가 사막을 구경한 적이 있다. 사막에 한두 시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게 죽을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일주일만 있으면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신을 만나지 않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었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사람은 고향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는 두려움을 겪는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나도 잘나가던 외국계 제약회사 임원직을 사표 내고 창업할 때 많이 두려웠던 것 같다. 사업자금으로 낸 수억원 빚을 과연 갚을 수 있을까, 대기업 명함을 파고 다닐 때처럼 사람들은 변함없이 나를 대해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거나 익숙한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안전지대 comfort zone’를 벗어나는 것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학생은 기말시험을 앞두고 불안하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불안하다.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할 때 불안하다. 이러한 불안을 잘 극복할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애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그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고 했다. 불안할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의 깊은 곳에 있는 자기(self)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믿음의 선조들은 고향을 떠나 광야로 나갔을 때 하나님을 만났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면서 하나님과 동행했고, 모세는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엘리야는 호렙산 굴속에서 하나님의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들었다. 이들은 안전지대를 벗어나서 낯설고 불안한 세상에 자신의 운명을 던져넣었을 때 하나님을 만났다.

어쩌면 안전하고 탄탄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창업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그동안 성취한 것, 쌓아온 네트워크, 삶의 터전이나 직장에서의 지위, 이런 것들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는가?” 하나님은 묻고 계신다. 의지할 곳이 없고,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척박한 곳에서 인간은 자기 내면의 영혼과 직면할 수 있고, 내 영혼과 대화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둘째, 아브라함은 낯선 자를 환대함으로써 신을 만났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서 나그네 셋을 만났고, 장막에 들여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에 들어온 나그네 둘을 만났고, 소돔사람들의 폭행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보아스는 보호받기 위해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들어온 이방여인 룻을 거두었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구약에서 족장들은 낯선 자를 환대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났다. 고대 중동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들은 더럽고 비위생적이며, 어쩌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내가 도와주지 않을 때 탈진하고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이 화려한 성전 건축물에 갇혀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지치고 약한 사람들 속에 계신다고 가르친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보다, 주변의 약한 사람을 돌볼 때 하나님을 만난다고 가르친다.

신약에서도 낯선 자를 환대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사상은 계승된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할 때 나를 영접한 것이라”고 했다. 엠마오로 향하던 글로바는 길에서 만난 나그네에게 날이 저물자 함께 머물자고 권유했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낯선 자는 누구인가. 수년 전 전쟁을 피해 제주도로 피난 온 예멘 난민들이 될 수도 있고, 북한의 빈곤을 피해 찾아온 탈북민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얘기하신다. 웅장한 교회를 짓고, 그곳에서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찾아오는 나그네를 대접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신다.

창업자에게 낯선 자는 직원들이다. 회사의 존재 이유는 가치를 창출해서 고객의 이익을 도모하고, 이윤을 극대화하여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를 운영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또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인재 양성이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곳은 학교와 회사다. 좋은 회사는 학교 이상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나는 믿는다.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문제해결 능력과 업무추진능력이 생긴다. 인간관계를 고민하면서 리더십이 생긴다.

경영자는 직원들을 구약의 족장들이 만났던 낯선 자라 생각할 수도 있고, 신약의 예수님이 영접하라고 했던 어린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을 환대한다는 것은 사내 복지일 수도 있고, 많은 월급일 수도 있고, 스톡옵션일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들의 성장을 독려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고, 성장을 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은 감사하게도 세상의 수많은 회사 중에 하필 내 회사의 날개 아래 터전을 잡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맡긴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환대할 때 하나님을 만날지 모른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두 가지 제시한다. 광야로 나가는 것과 낯선 자를 환대하는 것이 그것이다. 위압적으로 지어진 성전에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가보지 않은 광야의 길을 가고, 내 주변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자를 거둘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창업이다. 그래서 창업자의 길은 구도자의 길이다.

배지수 대표=정신과 의사이자 5년 전 창업, 최근 코스닥에 상장한 지놈앤컴퍼니를 경영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국 Duke 대학 MBA를 마쳤다. 판교소망교회(김창준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글은 정신과 의사가 벤처를 운영하면서 성경을 묵상한 내용이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