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불평등 바이러스… 신자유주의·긴축재정 탈피해야”

입력 2021-01-25 17:26 수정 2021-01-25 19:29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한 학교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담벼락을 칠판 삼아 가르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세계 최빈곤층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손실을 극복하는 데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1000명은 불과 9개월 만에 재산을 온전히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각국 정부에 더 급진적인 불평등 해소 정책을 펼칠 것을 촉구했다.

옥스팜은 25~29일 닷새 동안 온라인으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다보스포럼)를 맞아 발표한 ‘불평등 바이러스’ 보고서에서 “역사는 기록이 시작된 이래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킨 최초의 전염병으로 코로나19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옥스팜이 보고서를 준비하며 79개국 295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87%는 코로나19로 자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거나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00명은 불과 9개월 만에 코로나19로 인한 재산 손실을 거의 다 회복했다. 옥스팜 분석팀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해 억만장자들의 재산이 정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2월 19일을 100으로 놓고 이후 이들의 부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난해 3월 직후 억만장자들의 부는 70.3까지 떨어졌지만 같은 해 11월 30일 99.9로 사실상 원상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와중에도 세계 최고 부자 10명의 재산은 지난해 3월 18일 연간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 발표 이후 연말까지 되레 5400억달러(약 595조원) 늘어났다. 옥스팜은 “이들 10명의 재산 증가분만으로도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막을 수 있고, 전 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억만장자들과 달리 취약계층은 코로나19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이미 수억명이 일자리를 잃고 빈곤과 기아에 직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빈곤 인구는 10년이 지나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은행(IBRD)은 현재의 불평등을 각국 정부가 방치할 경우 하루 5.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 인구는 2030년까지 5억1000만명으로 늘어나고, 총 빈곤 인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옥스팜은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위기 속에 “팬데믹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혁신적인 정책이 갑자기 가능하게 됐다”며 “각국 정부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지금부터 행동한다면 빈곤층은 10년이 아닌 3년 안에 팬데믹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옥스팜은 ‘신자유주의 탈피’를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각국 정부는 ‘긴축 재정’이라는 낡은 방식을 버리고, 부·성별·인종 등의 이유로 보건·교육 등 분야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적극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만장자를 경제 실패의 징후로 간주하고 최고 임금제 및 생활임금을 도입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옥스팜은 특히 이번 위기를 가장 부유한 이들과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기업들이 벌어들인 초과 수익에 세금을 부과할 경우 1400억달러(약 154조원)를 마련할 수 있다. 모든 근로자들은 실업의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모든 아동과 노인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보고서가 예시로 든 아르헨티나의 경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부호들에게 임시적으로 부유세를 부과했고 30억 달러(약 3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빈곤층 및 중소기업에 제공할 의료용품과 구호품을 구비하는 데 사용됐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