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된 아이… 출생신고 못하는 ‘미혼 아빠’

입력 2021-01-22 13:43 수정 2021-01-22 14:14
8살 딸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어머니 B씨(44·여)가 1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8살 여아가 40대 어머니의 손에 살해돼 세상을 떠났다.

지난 8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A양은 태어난 지 8년이 다 되도록 이름도, 생년월일도 등록 안 된 ‘세상에 없는 아이’였다.

친부는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친모가 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혼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친모는 전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로 A양을 낳았다.

친부는 딸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법원에 민원도 넣고,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를 하면 A양은 전 남편 호적에 올라가게 된다. 민법에 따르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강한 추정을 받는다.

친모가 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동안 A양의 존재는 사회에서 지워졌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A양은 어린이집과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교육 당국과 기초자치단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사회에서 감춰진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A양은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 누구도 비극을 알아챌 수 없었다.

친모는 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고, 친부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먼저 숨진 딸을 혼자 보낼 수 없고 딸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A양 사례처럼 혼인 외 출생아나 미혼부의 자녀는 신고 절차가 까다롭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편적 출생신고제, 출생통보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태어나는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을 공공기관에 즉시 통보하는 제도다.

이미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출생통보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병원이 행정 책임을 떠안게 되고, 출생신고가 의무화로 인해 음성적인 출산이 증가할 수 있다며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2017년 국가인권위의 권고 이후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는 26일 출생통보제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해 이르면 3월 관련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법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