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불안에 겸직에… ‘면피 급급’ 아동학대전담공무원제

입력 2021-01-21 18:03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전담공무원(전담공무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쏟아진다. 임명 석 달 만에 담당자가 교체되는가 하면 고용 형태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라 보다 체계적인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부터 한 지자체에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으로 일해온 A씨는 최근 다른 부서로 발령 받았다. A씨는 21일 “원래 전보 대상자여서 잔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며 “일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동학대 관련 보직은 업무 강도와 과도한 책임 때문에 최근 기피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회만 생기면 다른 직렬로 인사 이동을 신청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채용 형태에 대한 규정도 없어 같은 일을 하는 전담공무원의 신분도 천차만별이다. 특히 일부 지자체가 전담공무원을 임기제로 선발하면서 추후 ‘계약직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와 광진구, 경기도 여주시는 지난해 1~2년 단기계약 형태의 임기제 공무원을 선발해 전담공무원으로 배치했다. 해당 지자체들은 5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임기제 공무원 입장에서는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지자체에서 임기제 전담공무원으로 근무하는 B씨는 “아동학대 조사 경력이 있어 (기존 공무원보다) 전문성을 갖췄다는 장점도 있지만 솔직히 매년 계약이 갱신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5년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인력을 임기제 전담공무원으로 선발하면서 아보전과 지자체 간 보이지 않는 갈등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한 아보전에 근무하는 C씨는 “연봉 차이가 1000만원이 넘는데 지자체가 아보전 출신을 뽑겠다고 하면 많이 흔들리지 않겠느냐”며 “아보전 직원 사이에서는 ‘정부가 공공화 노력 없이 아보전 인력만 빼간다’는 비판도 있다”고 전했다.

전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지난 4일 기준 서울과 경기도 전담공무원 5명 중 1명은 겸직 상태였다. 서울은 62명 중 12명, 경기도는 39명 중 8명이 다른 업무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복지부에서는 아동학대 예방조사 업무만 전담하라고 하지만 사정에 따라 인력을 빠르게 배치하기 어려운 지자체는 당분간 겸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잠깐 면피하기 위해 급조한 제도를 만들어낸다면 아동학대 예방의 ‘공공화’가 아닌 ‘부실화’가 될 것“이라며 “아예 경력직으로 정규직 채용을 하는 등 공공기관 내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전문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