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댓글공작’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2심 집행유예

입력 2021-01-21 17:27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연합뉴스

이명박정부 시절 국군 기무사령부의 댓글공작을 주도한 혐의(직권남용)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배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정치 관여 댓글을 작성한 인원 가운데 일부는 ‘실무 담당자’에 불과해 직권남용 성립에 필요한 직무권한 침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2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배 전 사령관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통령과 청와대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인터넷에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의 신원을 불법 조회해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각 범행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취임 이후 업무집행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막연히 위법한 지시를 했다”고 지적했다.

배 전 사령관은 2011년 3월부터 2013년 초까지 ‘스파르타’라는 이름의 기무사 내 공작조직을 동원해 정치 관여 댓글 2만여건을 게시하도록 지시하는 등 댓글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아이디 수백개의 가입정보를 조회하고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녹취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등의 불법 활동을 지시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배 전 사령관이 대북 첩보계원들이나 사이버전담반원을 통해 정치 관여 댓글을 달게 한 혐의는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이들이 배 전 사령관과의 관계에서 ‘실무담당자’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직권남용이 성립되는데, 직무집행의 기준이나 절차가 법령에 정해지지 않은 실무담당자는 업무보조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지켜야 할 법령상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는 ‘의무 없는 일’을 지시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대신 재판부는 기무대 방첩수사 요원들에게 신원 조회를 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이들에게는 절차 진행에 관여할 고유 권한과 역할이 있었다”며 배 전 사령관의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아이디 신원조회 관련 공소사실 중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되지 않은 부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아이디를 조회한 부분만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죄나 면소판결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