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설 연휴 2주, 죽고싶지 않아…벼랑 끝 택배기사

입력 2021-01-20 16:07 수정 2021-01-20 17:00
지난해 여름 서울 동남권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컨테이너 트럭에 실린 택배 물품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내린 물품을 택배 노동자들이 직접 분류해 상차하면서 '분류 작업을 누가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붉어졌다.(독자 제공)

‘인간답게 살아보자’
노원구에서 택배업을 하는 김도균(49)씨의 차량 뒤편엔 작은 현수막이 붙어있다. 작년 초부터 붙여놓은 현수막에는 ‘12시 배송출발! 오전 하차 종료로 인간답게 살아보자!’란 문구가 적혀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택배회사 서브터미널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남양주의 한 서브터미널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분류작업 환경개선을 최우선 해결 과제라 꼽는다. 근로시간이 길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분류작업이기 때문이다. 작은 사탕 하나로 끼니를 대신한 김 씨는 “택배 노동자 4명당 1명의 분류작업 인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택배노조의 총파업 투표가 시작된 20일 서울 노원구에서 택배일을 하는 김도균씨가 물품배송에 나서고 있다.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에게 가장 큰 짐이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으로 몇천 개씩 들어오는 상품을 지역별로 분류하고 이를 차에 실어야 배송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보통 6시 반부터 진행되는 분류작업은 오후 1~2시가 돼야 끝이 난다. 그 후 배송지역으로 이동해 하루 300~400개의 택배 물품을 배송한다. 1분에 1개씩 택배 물품을 배송한다고 해도 밤 9시가 넘어야 일과가 끝난다.
20일 남양주의 한 택배 서브터미널에서 이남진 CJ대한통운 노원지회장의 차량에 '더 이상 죽이지 마라!'란 문구가 붙어 있다.

민족 대명절 설 연휴를 앞두고 2주간은 택배 노동자에겐 두려운 시간이다. 설 특수에 코로나의 영향까지 받아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 밤늦게까지 배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문구를 차량에 붙이고 다니는 이남진(50) CJ대한통운 노원지회장은 “설 특수를 앞두고 파업 투표를 하는 게 시민들에겐 미안하지만, 택배 노동자에게 그 2주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라며 “ 높은 업무 강도가 2주간 계속되면 누군가는 또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원구에서 택배업을 하는 김도균씨가 20일 택배 배송에 한창이다.

지난 19일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날 택배노조는 총파업 여부 결정을 위한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특히 과로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에 대한 노사의 견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택배노조는 분류작업이 택배사의 책임이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택배업체들은 택배 비용 현실화 등 없이는 모든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노원구에서 택배업을 하는 김도균씨가 20일 택배배송에 한창이다.

노원구에서 택배업을 하는 김도균씨가 20일 택배배송에 한창이다.

김 씨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8~10시간의 노동으로 일과를 마치고 싶다”며 “정부와 사용자 측이 이 같은 노동실태를 하루빨리 개선해 택배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밝혔다. 분류작업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 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