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피터팬 웬디/ 두 팔을 하늘 높이/ 마음엔 행복한 순간만이 가득/ 저 구름 위로 동화의 나라/ 닫힌 성문을 열면/ 간절한 소망의 힘 그 하나로 다 이룰 수 있어.’
가수 유영석이 1994년에 발표한 ‘화이트’라는 곡의 가사 후렴구가 지난해 ‘제6회 디카시 공모전’ 대상에 선정됐다. 응모자는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손모씨. ‘하동 날다’라는 제목을 달아 제출했다. 유영석의 가사를 손씨가 ‘무단 도용’한 것이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와 ‘시’의 합성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에 5행 이내 시를 적은 창작 형태를 말한다.
네티즌들의 표절 의혹이 제기된 뒤에야 손씨의 당선은 취소됐다. 당선 취소 소식을 들은 손씨는 되레 “글은 5행 이내 시적 문장이면 될 뿐이지 본인이 창작한 글이어야 한다고 돼 있지 않다. 그래서 노래를 인용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씨는 게다가 디카시연구소 사무국장과 주최 측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2월 초 통영에서 재판이 예정돼 있다. 디카시연구소 측은 “‘공모전’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창작’을 전제로 하는 문학 대회”라는 입장이다.
노래 가사가 무단 도용된 사실을 알게 된 유영석은 “나도 모르는 내 창작물을 무단으로 쓴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며 “저작권(재산권)을 위임받은 저작권 단체에서 이 부분과 관련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머니투데이에 밝혔다.
손씨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은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를 도용해 2020년 5개의 문학 공모전을 휩쓸어 논란에 휩싸인, 바로 그 인물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소설의 본문 전체가 무단 도용됐고, 도용한 분이 지난해 5개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했다는 사실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며 “구절이나 문단 일부를 베낀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갖다 붙이는 수준으로 베꼈다”고 폭로했다.
손씨는 김 작가의 작품을 베껴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휩쓸었다.
표절 논란이 일자 손씨는 언론을 통해 “김민정 작가에게 많이 미안하고,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글인 줄 알았고, 작품 표절이 문학상 수상에 결격 사유가 되는지도 몰랐다”는 주장을 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