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 50% 유색인종 발탁…오바마 때보다 많아
재무·국방 등 핵심 요직에 여성·흑인 ‘중용’
오바마 재탕·검증 안된 인사·아시아계 홀대 지적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미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유색 인종과 여성들을 중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인종적 다양성과 양성 평등 강화는 바이든 당선인의 오랜 약속이었던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지난해 12월 3일에도 “나는 백악관과 내각이 미국처럼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실제 인구 분포보다 유색 인종과 여성들이 고위직에 부족한 현상을 뜯어 고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백인 남성’ 중용 현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오는 20일 미국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바이든 당선인은 차기 행정부 인선에서 외관상으론 약속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에서 장관과 장관급으로 지명된 유색 인종 비율이 50%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타이틀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CNN방송은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유색 인종 비율은 지금까지 신기록이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유색 인종 비율 42%를 넘어섰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차기 바이든 행정부에선 ‘여성 최초’, ‘흑인 최초’의 기록이 쏟아졌다.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태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은 여성 최초 부통령이자 유색 인종 최초 부통령이라는 2관왕을 차지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정부에서 ‘빅 4’로 불리는 법무·재무·국무·국방장관 자리와 미국 17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등 5대 핵심 요직에 여성 2명과 남성 1명을 낙점한 것도 거대한 변화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자리에 유색 인종과 여성들을 배치했던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차기 바이든 행정부 인선에 대해 비판과 우려도 제기된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인사들이 중용돼 ‘오바마 재탕’, ‘동문회 모임 같은 인선’ 등의 비아냥이 나왔다.
인종 다양성과 양성 평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기용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초’ 등 튀는 인물들 위주로 인선해 내각을 아우를 수 있는 경험 많은 베테랑이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거론된다. 인종 다양성엔 성과를 거뒀지만, 흑인과 히스패닉에 치중돼 아시아계가 홀대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바이든 당선인 입장에서 인선은 이미 끝마쳤으나 트럼프 대통령 탄핵 문제 등으로 장관 지명자들에 대한 상원 인준이 늦어지는 것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유색인종 장관 비율 역대 최다…오바마 때보다 많다
CNN방송은 바이든 당선인이 지명한 장관과 장관급 인사들을 분석한 결과, 백인과 유색 인종의 비율이 정확히 ‘50%대 50%’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61%인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인들의 장관직 비율은 인구 비율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백인이 역차별 받았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바이든 내각에서 흑인의 장관·장관급 비율은 19%다. 히스패닉은 15%를 차지했다. 아시안계가 8%, 인디언 원주민이 4%를 각각 기록했다. 흑인들은 인구 구성 비율(12%)보다 장관급 비율이 더 높았다. 아시아계도 인구 비율 6%보다 장관직 비율이 소폭 높았다. 다만, 히스패닉계는 인구 비율 18%보다 조금 낮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색 인종 비율이 16%였던 점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조류를 보인다고 CNN은 설명했다. 한 인권운동 지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종적 다양성에 대해 “이정표를 이뤘다”면서도 “바이든은 (야구로 치면) 1루에 도착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대만계인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포함해 아시아계 인사 2명이 장관급 요직에 임명됐지만,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정작 부처 장관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CNN은 이번 대선의 자체 출구조사 결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61%가 바이든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흑인·여성, 실세 부처에 배치…달라진 바이든 인선
바이든 당선인의 인선에서 ‘최초’의 기록은 쏟아졌다. ‘여성 최초’, ‘흑인 최초’에다 ‘성소수자 최초’, ‘원주민 최초’도 등장했다. 미국 NBC방송 등이 차기 바이든 행정부를 ‘최초들의 내각(Cabinet of Firsts)’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여성·흑인 등을 핵심 요직에 중용한 것이다. 생색내기가 아니라 힘 있고 중요한 자리에 여성과 흑인을 앉힌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4개 핵심 요직이라 ‘빅 4’로 불리는 법무·재무·국무·국방장관 자리에 백인 남성을 2명만 기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빅 4’를 모두 백인 남성으로 채웠었다.
여기에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정보기관의 수장인 DNI 국장에 여성인 애브릴 헤인스를 기용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는 바이든 인선의 대표적 사례다.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는 옐런의 지명 사실을 알리면서 “옐런이 상원 인준을 통과할 경우 미국 재무부 231년 역사에서 첫 여성 장관이 된다”고 의미부여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코로나19로 무너진 미국 경제회복의 중책을 옐런 지명자에게 맡긴 것이다. 옐런은 미국 중앙은행장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경제계 거물이다.
흑인 군인의 전설인 로이트 오스틴도 국방장관에 지명됐다. 4성 장군 출신의 오스틴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미국 최초의 흑인 국방장관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 오스틴은 인사가 날 때마다 미국 흑인 군인 최초의 역사를 썼다. 그는 흑인 최초의 전투사단 장성이었으며, 흑인 최초 육군 참모차장이었으며, 흑인 최초 미군 중부사령관을 역임했다.
헤인스도 여성 최초로 DNI 국장에 지명됐다. 헤인스 역시 미국 정보기관 사회에서 여성 최초 타이틀을 많이 보유한 인사다.
이들 외에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지명자는 쿠바 출신으로, 이민자 출신 첫 국토안보부 장관이 될 전망이다. 뎁 할랜드 지명자는 원주민 출신 최초의 내무장관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사퇴했던 피트 부트지지 교통장관 지명자는 성정체성을 공개한 성소수자 중 처음으로 장관에 지명됐다.
그러나 일부 지명자들이 상원 인준 과정에서 낙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방장관이 되기 위해선 퇴역 후 7년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한 오스틴 지명자 등이 위험선상에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사청문회 일정이 늦게 잡힌 것은 바이든 당선인의 애를 태우는 대목이다. 재무·국무·국방·국토안보부 등 4개 부처 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19일로 예정돼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장관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