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 시작되자 유튜브나 SNS를 타고 백신 관련 허위 정보와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에선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른바 ‘안티 백서(anti-vaxxer)’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다음 달 말쯤 첫 백신 접종을 앞둔 한국도 접종 속도와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시기별 백신 분량의 신속한 공급, 접종 인프라 구축과 함께 백신 신뢰에 악영향을 끼치는 음모론이나 가짜 뉴스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0월 해외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83%가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고 답해 서구 국가들(50~60%대)에 비해 백신 거부 반응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음모론은 늘 불안과 공포, 혼란을 틈타 움트고 퍼져 나간다.
국내에선 600명 가까운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초래한 종교시설 BTJ열방센터가 당국의 방문자 검사요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코로나 백신 음모론과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코로나19는 전세계를 단일 정부로 만들어 통제하려는 특정 세력이 배후이고 그들이 세계 인구 수를 조절·통제하기 위해 백신을 주입해 DNA를 조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백신 음모론이 발 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방역당국이 지금부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는 행위에 맞서 적극적으로 ‘카운터 메저(countermeasure·대응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울러 국민 스스로 진위를 가려낼 수 있도록 ‘백신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mRNA백신이 유전자 변형?… 가능성 희박
최근 인터넷에선 코로나19 팬데믹 조작설을 주장하는 미국 민간단체 ‘세계 통제를 멈춰라(STOP WORLD CONTROL)’가 제작한 동영상이 급속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 등록된 동영상은 특히 ‘mRNA(메신저 리보핵산)’ 플랫폼으로 개발된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의 위험성을 집중 부각하며 접종하지 말라고 설파한다. 일부 국내 포털TV 개인 운영자들이 이 단체의 여러 영상들을 공유하며 백신 반대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들의 주장이 대체로 사실이 아니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음모론에 가깝다고 말한다.
mRNA백신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등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 승인이 났다는 주장이 있지만 작동 원리상 mRNA가 DNA 변형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mRNA백신은 근육 주사로 인체에 주입되면 세포내 단백질 공장인 ‘리보좀’으로 이동해 항원으로 작용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고 이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토록 유도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3일 “mRNA는 세포 내부로 들어가지만 DNA가 있는 세포핵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mRNA 자체가 불안정한 구조여서 체내에 들어오면 본래 목적인 항원 생성 역할만 하고 대부분 수일 내에 분해돼 없어진다.
생체 칩 심어 조종한다?… 현실적 불가능
동영상에서 이들은 또 인체와 친숙한 하이드로젤에 바이오센서(일종의 생체 칩)를 장착해 백신과 함께 몰래 주입한다는 주장도 편다. 몸 속에 주입된 바이오센서가 생체 정보를 내보내면 정부나 거대기업이 빅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접종자들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바이오센서 기술이 코로나19 백신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짧은 설명을 덧붙이지만 영상을 접한 사람들에겐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갖게 할 수 있다. 또 발광 물질인 ‘루시퍼레이스(luciferase)’를 백신과 함께 주입하고 이를 통해 백신 접종 여부와 신분 등을 확인함으로써 정부가 감시 사회를 만들려 한다는 주장도 유포하고 있다.
미세한 바이오센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지금 나와있거나 개발 중인 백신에 포함시키거나 더구나 피접종자 몰래 주입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각국의 규제당국은 허가된 백신의 함유 물질이나 재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데 루시퍼레이스의 주 성분인 루시페린은 포함돼 있지 않다.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수석연구원은 “바이오센서 같은 첨단기술은 이론적으로 개발 가능하지만 백신에 적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상용화된 바 없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백신 음모론자들은 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낙태한 태아 조직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퍼뜨리고 있다. 1960년대 낙태아의 폐 조직으로 만들어진 ‘MRC-5’라는 세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백신을 공동개발한 옥스퍼드대는 최근 언론에 “백신개발 과정(세포주 실험)에 MRC-5가 아닌 HEK-293세포를 썼다. 이는 낙태아 세포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밖에 코로나 백신에 원숭이 뇌가 들어가 있다거나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인 빌 게이츠가 백신 판매 목적으로 전 세계에 코로나 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등 황당한 음모론도 회자되고 있다.
안전성 등 백신 정보 투명하게 공개해야
감염병이나 백신 관련 음모론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생성되는 측면도 있다. 김우주 교수는 “백신은 과학이지 정쟁이나 선거 수단으로 이용되어선 안된다”면서 “루머나 음모론이 싹트는 것을 막으려면 우선 정부가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접종 후 사후 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영국 등은 백신 의약품의 경우 의료진용과 일반인용(이해하기 쉽게 설명) 데이터와 설명을 그래픽까지 곁들여 홈페이지에 세세히 올려놓는다”고 덧붙였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상업성을 띤 유튜브나 SNS는 물론 언론도 음모론 생성이나 확산에 자유롭지 못한데 이들을 규제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결국 국민이 음모론이나 잘못된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백신 리터러시’ 수준을 갖추는 수 밖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전문가들이 백신의 A부터 Z까지 설명하고 교육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형 수석연구원은 “백신 접종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음모론이 확산된다면 백신 거부 등 심각한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주 유통 통로인 유튜브나 SNS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