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의 선고 공판에서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함께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및 제조업체의 전직 임직원들 총 11명에게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 및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 및 나머지 쟁점들 역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증명이 없다”고 판단 내렸다.
재판부는 또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고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재판부가 2년 동안 심리한 결과 CMIT 및 MIT 살균제는 유죄판결을 받은 PHMG 등과는 성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재판부로선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적 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은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사상자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홍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할 당시 대표이사를 지냈다. 홍 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출시 당시 대표이사를 맡아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인 CMIT 및 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사용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안 전 대표는 1995년 7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애경산업 대표로 근무했다.
검찰은 수사를 거쳐 안 전 대표 등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원료 물질이 인체에 유독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판매·유통한 것으로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지난달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각 금고 5년을 구형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각 금고 3~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금고는 수형자를 형무소에 구치하지만 징역처럼 강제노동은 시키지 않는 처벌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