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야간 근무하다 사망… 대법 “업무상 재해”

입력 2021-01-12 13:55

장시간 강도 높은 노동과 불규칙한 야근을 하던 도중 사망했다면 업무 시간이 규정상 과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대우조선해양 직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조립 및 용접업무를 하던 A씨는 2016년 11월 4일 야간근무를 하다 갑자기 통증을 느껴 조퇴했다. 이후 응급실에 내원한 뒤 대형 병원에서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았고 10일 뒤인 11월 14일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 측은 “이 사건 상병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발병하였다거나 이로 인해 기존 질환이 악화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고, A씨의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망 원인이 된 급성 심근염이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용접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고 봤다. 또 A씨의 노동시간이 고용노동부가 정한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 감정의 두 명이 상반된 소견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망인의 사망과 망인이 수행한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발병 당시 A씨가 특별한 기초 질환이 없었고, 업무상 요인 외에 급격히 악화돼 사망에 이를 만한 요인을 찾아 볼 수 없다”며 “A씨는 평소 주야간 교대근무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초기 감염이 발생했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야간근무를 계속하던 중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