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기초단체·지방의회가 정부의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 기간 이를 위반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4분기 일명 ‘판공비’로 불리는 업무추진비 사용명세를 분석한 결과다.
방역수칙 위반 단속을 담당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간담회 개최 등의 명분을 내세워 코로나19 확산의 매개가 될지 모를 5인 이상 ‘집단 모임’을 무분별하게 강행한 것이다.
12일 광주지역 자치구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0년 4분기 업무추진비 사용명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시행된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에도 아랑곳없이 구청장 등 간부들이 주도하는 집단 식사모임을 개최한 사례가 많았다.
더구나 같은 장소에서 형식적으로 2~3인 단위로 나눠 앉는 ‘테이블 쪼개기’ 등 꼼수를 동원한 모임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임택 동구청장의 경우 지난달 24일 점심 5명(12만 원·일식집), 저녁 8명(20만 원·고깃집)과 잇따라 식사모임을 가졌다. 연말연시 이웃돕기 관계자와 코로나19 방역 노고자를 위로한다는 명목이었다.
동구 부구청장 역시 지난달 24일 저녁때 5명이 참석한 ‘희망 나눔 관계자 간담회’(13만8000원·장어집)를 가졌다. 이어 29일 점심때도 동절기 피해 예방 관계자 5명(12만4000원·일식집)과 함께 식사했다고 공개했다.
남구청 간부들도 5인 이상 집합금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남구보건소는 지난달 24일 5명이 참석한 인플루엔자 접종 관련 사업관계자 간담회 식비(시책추진비)로 28만600원을 사용했다고 공시했다.
남구 기획실은 같은 날 현안업무 추진을 위해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 9명의 식비(한정식)로 19만 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광주 서구의회 기획총무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의회사무국 직원을 격려한다며 7명과 간담회를 했고 다음날인 29일에는 13명이 동석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업 간담회’를 개최한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시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달 22일 전체 공무원들에게 동문회 등 사적 모임을 전면 금지하고 다수가 참석하는 공적 회의도 가급적 연기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하라고 ‘공직자 공무 관리강화지침’을 통해 지시한 바 있다. 연말 특별방역대책 차원에서 실내외 상관없이 5인 이상 집합을 금지하라는 행정·특별 명령도 발동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위반할 경우 위반 사업주와 이용자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1·2항에 따라 과태료 부과와 함께 행정조치를 받는다. 이용자는 10만 원 이하 과태료, 사업주는 3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고 시설 폐쇄 또는 운영을 중단시킬 수 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관련 비용에 대한 구상권도 청구할 수 있다.
앞서 광주 북구는 지난 9일 경찰 단속 통보 공문에 따라 지난달 30일 한 식당에서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사를 한 모 사단법인 회원들과 식당 사업자에게 사실확인을 거쳐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광주지역 지자체 등이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한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업무추진비 명세를 통해 드러나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자영업자 김 모(50) 씨는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단속 주체가 돼야 할 공무원들이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혈세로 비싼 밥을 먹어가면서 얼굴을 마주하는 간담회를 꼬박꼬박해야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