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정인이의 죽음은 한국 사회를 뒤집어놨다. 한창 부모 품 안에서 뛰놀아야 할 생후 16개월 영아가 장기가 끊어진 채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정인이는 숨을 거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정인이의 죽음을 둘러싼 공분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위선적인 양부모에게 쏟아진 대중의 분노는 이내 3차례 신고에도 사태를 방치한 경찰, 아동보호기관으로 번졌다. 관련자들을 향해 비난의 뭇매가 쏟아졌다. 가해 행위·발언에 집중한 보도도 여론에 불을 지폈다.
국민적 공분은 고스란히 국회가 이어받았다. 여야는 모처럼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에 뜻을 모았다. 지방자치단체나 수사기관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으면 즉각 수사에 들어가고, 경찰·공무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유례없는 속도전에 뜻밖에 현장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개악이라는 지적이었다. 결국 최종 개정안에서 ‘학대 아동과 부모 즉시분리’와 ‘형량 강화’ 같은 일부 조항은 빠졌다.
아동학대 사건을 현장에서 챙겨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비판의 목소리를 낸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정인이법이 통과되기 전 “개악을 걸러낼 새도 없이 이 많은 법을 심사하고, 통과시키려 한다”며 졸속 입법을 멈춰 달라고 호소해왔다. 김 변호사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인이법 통과를 두고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법안이 통과돼 기뻐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이다. 국회를 향한 김 변호사의 지적은 거침이 없었다.
-지난 8일 정인이법이 통과됐다.
“현행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아이의 얼굴과 본명을 공개한 이례적 사건이라면 한국 사회가 크게 진보하는 계기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법이 통과돼도 ‘아, 현장이 일할 수 있게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상황이 더 나빠지려는 것을 겨우 막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국회의원들은 독소조항이 가득한 법안들을 막 꺼내 들었다. ‘아동을 학대 행위자와 즉시분리를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한다’는 놀라운 내용이 포함될 정도였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아이를 격리하면 어디로 보낼 것인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학대 피해 아동 쉼터 정원은 정해져 있는데 그럼 의원 집에서라도 재워주겠다는 건가. 무책임하다.” (현재 즉시분리된 아이는 학대 피해 아동 쉼터, 가출청소년 쉼터, 소년범 수용시설, 보육원 등으로 보내진다. 전체 수용 정원이 1000명인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포화상태이고, 기타 장소는 적응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 형량 강화 등 일부 조항은 빠졌다.
“독소조항이 빠졌다는 건 토론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 사안으로 국회에서 토론했다는 것 자체로 긍정적이긴 하다. 기본적으로 국회는 아동학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없었으므로 아이가 죽어갈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내놨다. 실제 상황을 모르고 내놓은 대책에 현장만 망가졌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흐르다가 이성을 어느 정도 찾고 독소조항 몇 개를 빼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잘 돼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질 뻔했는데 다행인 기분이다.”
-그토록 열을 올린 국회가 사실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 아동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특성 때문이다. 아동은 정치인들에게 표가 안 된다. 당사자의 권리를 스스로 옹호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보다 아동이 더 취약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가해하는 이에게 다시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정치인들이 아동학대 문제나 현장을 모른 채 ‘왜 이것도 못 해’라는 식으로 법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들이 할 일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즉시분리’ 조항은 이번 정인이법에서는 빠졌지만, 오는 3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1년 안에 학대 신고가 2번 들어오면 가해자와 아동을 분리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즉시분리가 필요하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도 있다.
“무조건 기계적으로 즉시분리하는 게 문제다. 즉시분리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당장 위급한 사건은 당연히 아동을 부모로부터 바로 분리해야 한다. 다만 두 차례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기계적으로 격리하면 앞서 말한 쉼터 문제 등 부작용이 너무 크다. 지금도 법에는 심각하지 않은 사건이라도 아동 의사를 고려해서 분리를 결정하라고 쓰여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적 분리제도가 시행되면 극단적으로 말해 자동응답(ARS)을 돌려도 상관없다. ARS 아동학대 신고번호로 2번만 전화해 신고하면 바로 보육원으로 보내지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경찰에 한 번, 아동보호기관에 한 번 이렇게 두 차례 신고 전화를 해도 이것도 즉시분리 조건이 되나. 2월 임시국회에서 손 봐야 할 부분이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업무 범위가 과중하다는 문제도 있다.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3박자를 맞춰 업무 분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에 권한만 늘어놓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아동복지 전담공무원은 학대 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다.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아동학대까지 조사하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제도도 지난해 10월 처음 시행돼 현장에선 우왕좌왕이다. 행정 현장에서 할 수 없는 부분, 특히 조사 부분은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침해 사안을 살펴볼 때 수사기관이 조사하면 해당 사건을 각하시킨다. 조사 주체가 많아지면 결국 사건이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아동보호기관도 문제다. 학대 사건을 기관 직원이 조사하고, 경찰이 또 조사한다. 경찰이 기관 측 조사내용을 다 믿지도 않는다. 어차피 새로 수사해야 한다. 피해자만 여기저기서 같은 질문을 듣고, 같은 서류를 반복해내야 하는 상황이다. 아동학대 사건이 어렵고, 잘 모르겠으니 ‘너도 하고, 너도 조사해봐’ 하는 식으로 만들어놓으면 이번처럼 ‘제가 안 했는데요’ 이렇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생긴다. 아동보호기관이 학대 신고를 받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신고는 여러 군데에서 받을수록 좋다. 결국 신고 이후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설계하자는 얘기다. 특히 경찰이 초기부터 사건에 신속하게 개입해야 한다. 신고 당시 당직 서던 경찰이 현장을 보고만 돌아오지 않도록 전문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맹렬히 들끓던 공분이 이내 차갑게 식은 장면을 자주 봐왔다. 법이 바뀌어도 현실이 그대로면 정인이의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아동학대 문제를 차분하게, 천천히 제대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술에 배부를 순 없다. 단순히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이런 차원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먹고살기 바쁜 현실이다. 매일 쏟아지는 다른 이슈도 많다. 결국 실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 목소리 듣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막강한 권한의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옥상옥이 될 우려가 크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보건복지부 지침을 잘 모른다. 법에 쓰여 있는 것마저 잘 모르니 지침은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장 인력들이 현 제도부터 제대로 활용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내려오는 공문만 많아질 게 뻔하다. 지금까지의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원인부터 시원하게 긁어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현장에서는 체념밖에 남지 않는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