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차만 확인한 한·이란 정부…최고지도자 측과 담판짓나

입력 2021-01-12 00:09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이란으로 출국하고 있다. 최 차관은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 이란 테헤란에 도착한 뒤 억류된 우리나라 국적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와 선원의 석방 교섭에 나선다. 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선박 나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 외교당국이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우리 정부 교섭 대표단은 이란과의 인도적 교역을 확대함으로써 조기 억류 해제를 이끌어낼 방안을 찾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11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0일 이란에 도착해 당일 오후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과 회담을 갖고, 이란과의 보건방역 등의 협력 차원에서 보건부 차관도 만났다”고 밝혔다.

회담에서 최 차관은 현재 이란에 억류된 우리 국민과 선박의 조속한 억류 해제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후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을 포함한 이란 측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에서도 억류 해제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외교부는 덧붙였다.

이란은 이번 선박 나포가 환경오염 때문이란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회담에서 아락치 차관은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문제를 집중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아락치 차관은 “한국의 행동은 미국의 몸값 요구에 굴복한 것일 뿐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서 “이란과 한국의 양자 관계 증진은 이 문제(자금 동결)가 해결된 뒤에야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란은 한국과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화했지만, 결과가 없었다”면서 “한국에서 이란의 자금이 동결된 것은 잔혹한 미국의 대이란 제재 부과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한국에 책임을 돌렸다. 한 외교부 전직 고위 관료는 “미국과 협상할 수 없으니 한국을 직접적으로 압박함으로써 한국이 미국과 교섭해 일부 예외인정을 받아내든지 하도록 하는 목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은 이 동결자금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과 의료장비 구매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란의 강경파와 가까운 정권의 한 내부자는 “한국은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약과 백신 구매가 절박한 때 이란의 자금을 묶어둘 수 없다는 걸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의약품이나 의료장비 등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 대표단이 이란 보건부와 만난 것과 관련해 “(이란과의) 인도적 교역을 확대하겠다는 게 기본적 방침”이라며 “상호 공통 관심사인 보건방역 때문에 접촉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부 대표단은 이란 행정부 쪽 인사들 외에 최고지도자 쪽 인물과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지난 8일 미국과 영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수입하지 말라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미국산 백신 수입을 취소했다. 우리 정부는 이란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는 데 있어 국내 동결자금을 활용하도록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아놓은 상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