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위안부 피해자’ 승소 이유…“국가가 개인청구권 소멸 못해”

입력 2021-01-11 14:07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의 첫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국가가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청구권을 직접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애초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배상 논의가 포함된 적 없고, 박근혜정부 시절 이뤄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핵심 논리였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시는 일본 정부가 취해 온 입장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11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의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가 가진 법적 성격을 분석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효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일본 정부는 그간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본제국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협상이 아니었다”고 규정했다. 당시 청구권협정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미국 등 연합국과 일본이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 한일 양국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반인도적 전쟁범죄인 위안부 동원은 애초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일본이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한 권리문제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에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성격 규정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었다.

특히 재판부는 “대통령이나 관계 행정부서의 의견이 사법부의 판단을 구속할 수 없다”며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한다”고 밝혔다. 청구권 협정의 내용이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좌우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외에 국민의 개인적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 여부를 대한민국 정부에 위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별도의 위임이나 법령의 규정 없이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처분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외교부가 2017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평가한 보고서에서 “양국 외교장관 공동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며, 그 성격은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고 결론내린 것도 판결문에 언급됐다. 재판부는 “합의가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합의 효력에 관한 양 당사자의 의사가 표시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법적 권리·의무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맞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