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억류된 한국 국적 화학제품 운반선 한국케미호가 현지의 최대 해군기지 앞에 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성사진으로 파악된 잠정적 정보지만 선박 위치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미국의 국방 전문가 H I 서튼은 지난 8일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www.hisutton.com)에 한국케미호 위치를 공개했다. 서튼은 전 세계 잠수함을 비롯해 수중 특수부대에 관한 저서를 집필한 전문가다. 2015년 초 저서 ‘은밀한 해안(Covert Shores)’을 통해 이란의 ‘파테흐(Fateh·정복자란 뜻으로 600t급 소형 잠수함)급 잠수함’의 실체를 공개한 바 있다.
11일 서튼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국케미호는 애초 알려진 대로 이란 남부 최대 항구 반다르아바스에 있다. 하지만 부두에 정박한 상태가 아니라 닻을 내리고 바다에 떠 있다. 위치상으로 반다르아바스항 남쪽의 섬 ‘케슘’의 해안에 더 가깝다. 케슘섬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주요 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서튼은 “위성을 통해 한국케미호의 잠정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배의 위치는 위도 27.03639°N, 경도 56.1701°E”라고 밝혔다.
서튼은 이어 센티넬2(유럽연합 지구관측 프로그램 ‘코페르니쿠스’의 위성) 사진이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낮아 최종적인 식별이 아니라면서도 “반다르아바스 근처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 가운데 이 위치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케미호의 위치는) 유조선 스테나임페로호가 정박했던 곳에서 멀지 않다”고 덧붙였다. 영국 유조선인 스테나임페로호는 2019년 7월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가 2개월여 만에 풀려난 배다. 당시 혁명수비대가 나포 이유로 든 것도 ‘국제해양법 위반’이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4일 오전 10시쯤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서 디엠쉽핑 소속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는 게 근거다. 한국 정부는 억류된 선박과 선원의 조기 석방을 위해 실무대표단에 이어 최종건 외교부 1차관까지 이란으로 급파했지만 교섭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란 당국이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70억 달러(약 7조6000억원) 자금 문제를 중점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동시에 선박 억류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내 은행 2곳에는 미국의 제재로 70억 달러 상당의 이란 원유 수출대금이 동결돼 있다. 이란은 이 돈으로 의약품과 의료장비, 코로나19 백신 등을 사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해 왔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