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재시도한다. 2019년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이어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탄핵 소추다. 탄핵안이 의결된다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재임 중 두 차례나 탄핵이 추진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강력한 팬덤 정치를 등에 업고 선동을 일삼던 분열형 지도자와의 이별을 앞두고 미국 사회가 마지막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 민주당은 오는 11일 하원에 트럼프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다음주 중 표결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대선결과 인증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지지자들에게 폭력과 반란을 선동한 혐의다. 지난 6일 사상 초유의 의사당 난동 사건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CNN은 탄핵안에 ‘반란 선동’ 조항이 들어갔다고 전했다.
탄핵안 초안 작성을 주도한 테드 리우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이날 오후까지 180명의 하원의원이 탄핵안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임기가 종료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열흘 안에 탄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탄핵을 위해서는 하원 과반, 상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는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지만 상원이 문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에서 각각 50석씩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탄핵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공화당에서 최소 17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일정도 촉박하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같은 당 의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휴회 중인 상원을 오는 19일까지 재소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20일 트럼프 퇴임 전까지 실질적 업무를 위한 상원 회의 개최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트럼프가 실제 탄핵된다면 임기 종료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공직자의 임기 종료 이후에도 탄핵이 가능하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상원은 탄핵된 트럼프가 다시는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투표를 부칠 수 있다. 탄핵안과는 달리 과반의 동의만 얻어도 트럼프의 ‘영원한 불출마’가 가능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재출마를 강력히 시사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시나리오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차기를 꿈꾸는 공화당 주자에게도 매력적인 카드라고 NYT는 전했다. 두 번 탄핵 추진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트럼프의 퇴임 후 정치 행보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정치적 포석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탄핵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 열성 지지층이 또다시 대규모 폭력 사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공포도 여전하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날 극성 트럼프 지지자들이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당일이나 임박한 시점에 세력 과시를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취임식 당일 수도 워싱턴DC에서 ‘100만 민병대 행진’을 벌이자는 제안, 취임식 전 마지막 주말인 17일 연방의회와 주의회로 무장 행진하자는 제안 등이 지속적으로 온라인에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론도대 사이버보안 연구팀의 존 스콧-레일턴 선임연구원은 CNN에 “바이든 취임식이 몹시 우려된다”며 “의사당 난동 사태에 대해 다수의 대중은 공포 속에 경악했지만,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이번 사태를 성공 사례로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현재 의사당 난동 사태의 참여자들이 의원이나 보좌진들을 살해하거나 억류하려는 계획을 세웠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