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ICBM 발사 가능성…바이든, 먼저 손 내밀어야”

입력 2021-01-10 11:18 수정 2021-01-10 11:20
미국의 북핵 전문가 4명 인터뷰
“북한, 비핵화보다 핵 프로그램 강화 천명”
“바이든, 코로나19 대처 등으로 북한 후순위”
“북한, 바이든 최우선순위 되기 위해 도발 우려”
“북한, 미국 공포 높여 북·미 대화 재개 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에서 보고를 했다고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뉴시스. 노동신문 캡처

침묵하고 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공개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사태가 정리되고, 바이든 당선인으로 정권 이양이 확실해진 시점을 기다렸다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북핵 전문가들은 9일(현지시간)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초반에 코로나19와 미국 경제회복, 중국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북한 문제가 뒤로 밀릴 수 있다”면서 “북·미 관계에 아무런 진전 없이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핵실험이나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핵실험 등 도발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이 된 뒤 북한에 과감한 조치를 먼저 제안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김 위원장이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지칭했던 것을 크게 보도했다. 또 김 위원장이 핵과 미사일 역량 강화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김 위원장이 핵 미사일을 더 소규모로, 더 가볍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만들 것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김 위원장은 지상과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고체 연료의 ICBM을 개발할 것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김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CNA) 국장,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CNI) 한국 담당 국장,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등 미국의 북핵 전문가 4명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뉴시스

클링너 “북한 도발하면 바이든, 트럼프보다 강경정책 취할 것”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미국의 변화나 한국의 유화적 자세가 북한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꺾어놓았다. 심각한 경제 상황에도 북한은 비핵화를 요구하는 유엔의 11개 결의안을 무시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은 비핵화 신호를 보내기보다는 새로운, 야심찬 핵 프로그램 개발 의지를 천명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은 핵 전략과 관련해 모순된 입장을 나타냈다. 북한은 핵무기를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주장했으나, 그들은 미국과 한국, 일본에 대해 선제적으로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반복적으로 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비해 사거리가 짧았던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무시했던 트럼프와는 다르게 대응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보다 강경한 정책을 취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실무협상에서의 비핵화 진전과 연계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CNA) 국장

가우스 “바이든, 먼저 북한에 메시지 보내야”

“김정은의 발언에서 낯선 대목은 없다. 김정은은 북·미 대화에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면서도 선제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해 핵 억제력을 희생하지도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는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 완화 등을 포함해 향후 북·미 관계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기다린다는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 뒤 제재 완화와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 보장 등 외교적 접근법을 제시해야 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조용히 실시하고, 새로운 공격 전략무기 시스템을 한반도에 도입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북한은 이에 대한 대가로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것이다.

하지만, 난관이 적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접근법을 취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고, 미국 의회가 이를 동의할 여부도 지켜야 봐야 할 대목이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CNI) 한국 담당 국장

카지아니스 “바이든 관심 끌기 위해 북한, ICBM 발사 가능성”

“김정은의 의도는 이해하기 쉽다. 김정은은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초반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경제회복, 그리고 중국 문제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 문제에 대해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알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의 핵 억제력 증강 전략을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은은 적어도 향후 몇 달 동안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으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을 취할지 예의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달 동안은 현상 유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정은은 북한 주민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피해 회복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침묵은 큰 실수가 되고 있다. 김정은은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 목표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이뤄낸 것에 기반하고, 싱가포르 북·미 합의를 재확인하기를 원한다고 말해야 한다. 바이든은 향후 6개월 정도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벌여야 하지만, 김정은에게 진지하게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바이든은 김정은에 무언가 신호를 먼저 발신해야 하며, 아무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경우 김정은은 바이든 리스트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올해 후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 탄두가 태평양에 떨어지면서 김정은의 ICBM이 완전히 작동한다는 사실을 입증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바이든은 그의 의사를 지금,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매닝 “북한 목표, 비핵화 아니라 핵 보유국 인정”

“김정은의 발언은 다목적 카드다. 하나는 북한 내부용이다. 김정은은 핵무기의 억제력을 통해 힘과 강인함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또 핵과 미사일 능력 확대를 과시하면서 미국의 공포를 높여 바이든 행정부 내의 군축론자를 유인해 북·미 대화 재개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김정은의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며, 군축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얻어내고,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낯익은 전략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