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제정운동본부와 산재 유가족들은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과 관련해 ‘반쪽짜리 법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날 법안 통과 후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제정 법안에 일부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 “형사처벌 수준이 낮고 경영책임자의 면책 여지를 남겼다”고 밝혔다.
이들은 “제정된 법에는 ‘말단 관리자 처벌이 아닌 진짜 경영책임자 처벌’ ‘하한형 형사처벌 도입’ ‘시민재해 포괄·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부상과 직업병도 처벌’ 등 운동본부가 원칙으로 밝혀온 것들이 담겼다”면서도 “법 적용에 차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는 중대재해법 제정의 정신”이라며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죽음을 중대재해법 적용에서 제외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한 것과 일터에서의 괴롭힘에 의한 죽음을 배제한 것, 책임 있는 발주처와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을 삭제한 것 등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경제단체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법이 제정되면 기업이 망할 것처럼 주장하며 끝까지 제정에 반대했다”면서 “생명과 안전을 우선 가치로 한다는 문재인정부 각 부처는 적용대상을 줄이고 처벌을 낮추기에 급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29일간 단식 농성을 한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실망스럽지만 이 법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YTN과 인터뷰에서도 “결과적으로 차별법이 된 것”이라며 “엄마의 마음으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자식은 살리고 어떤 자식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이익 관계를 따지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국민 목숨을 살리는 일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든 할 것 없이 찬성해야 한다”라고 했다.
법안 처리가 진통을 겪는 동안 김 이사장 외에도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광주의 한 공장에서 파쇄기에 끼어 사망한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 CJ진천공장에서 괴롭힘 등으로 숨진 실습생 김동준씨의 어머니 강석경씨,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 등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단식을 이어왔다.
이번에 통과된 제정안은 여야가 합의해 마련한 안으로 정부안이 대폭 수용했다. 큰 특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눴다는 점이다. 중대산업재해는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한 사고를 의미한다. 중대시민재해는 제조물이나 공중이용시설 등의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고 등이 해당된다.
여야 합의안은 당초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낸 안이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안보다 처벌 대상은 줄고, 처벌 수위는 대폭 낮아졌다.
우선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제외했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상시근로자 10인 이하의 소상공인과 PC방, 노래방 등 다중이용업소 바닥 면적 기준 1000㎡ 미만의 업소는 제외됐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부처의 반발을 받아들인 결과다.
또 사망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는 강 의원이 낸 ‘3년 이상 징역’이나 박 의원의 ‘2년 이상 징역’보다 하한을 낮추고, 벌금의 하한선도 없앤 것이다. 법인의 경우 5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법인의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 역시 정부 의견을 받아들여 ‘최대 5배’로 정해졌다. 이 역시 ‘최저 3배 최대 10배’인 강은미 안과 ‘최저 5배’를 제안했던 박주민 안보다 후퇴한 내용이다.
논란이 됐던 처벌 대상도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명기해 대표이사는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과잉 입법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과 공무원 처벌 특례규정은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중대재해법은 공포일로부터 1년 뒤 시행된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공포일로부터 3년간의 유예 기간을 뒀다. 규모별 유예기간 차등이 아예 없었던 강은미 안보다는 후퇴했지만 50인 미만, 50~100인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등을 뒀던 정부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