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분이 이어지자 국회가 이른바 ‘정인이 법’을 쏟아낸 것에 대해 아동 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온 김예원 변호사가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으로 현장 혼란만 극심하게 하지 말라”면서 “제발 진정하고 멈추라”고 일갈했다.
장애인권법센터 김 변호사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고려해 잘 만들어야 한다”면서 쏟아져 나온 추가 법안들의 한계점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먼저 ‘즉시분리’ 매뉴얼과 관련해 “고위험가정, 영유아, 신체 상처, 의사신고 사건 다 이미 즉시분리 하도록 돼 있다”면서 “그 매뉴얼이 잘 작동되는 현장을 만들어야지 ‘즉시분리를 기본’으로 바꾸면 가뜩이나 쉼터가 분리 아동의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갈 데 없는 아이들을 어디로 보내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왜 현장이 이 지경이 됐냐”면서 “일은 어려운데 전문성 키울 새도 없이 법 정책 마구 바꾸고 일 터지면 책임지라는데 누가 버텨내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조사 권한 분산시켜 놓으니 일은 안 하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만 한다. ‘어려우니 권한분산’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잘하게 해서 유기적 협력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변호사는 이 권한 분산과 관련 “조사와 수사는 아동 인권과 법률에 (대한) 전문성을 ‘훈련받은’ 경찰이, 피해자 지원과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이, 내밀한 정보 DB와 서류 행정처리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하게 해달라”면서 “그래서 서로 일 미루지 않고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사건 지원하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자치경찰제+수사권조정으로 경찰의 초기 역할이 훨씬 중요해진다. 아보전이나 공무원 핑계 대지 마시고 전문성가지고 초기부터 적극 개입해서 수사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일선 경찰서는 이것을 할 수 없다. 순환보직+3교대라 아동심리 아동 인권 아동 관련법 익힐 수 없다”고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형량 강화나 즉시 분리 같은 법적 강화가 아니라 당장 현장에서 일이 굴러갈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폭력 사건 처리와 관련해 광역청 단위에서 성폭력특별수사대를 설치해 집중적으로 전문성(지식, 감수성, 피해자지원)을 강화하고 현재 여성범죄특별수사대(여특대)로 역할을 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광역청 산하 여특대는 13세미만성폭, 장애인성폭 등 어려운 사건만 전담하고 있지만, 거기서 쌓인 역량이 일선서에 전달된다”면서 “아동학대특별수사대를 광역청단위로 신설하셔서 아동학대사건 전문성 집중강화 하시고 미취학 아동 사건, 2회 이상 신고사건 등 취급사건의 범위를 정해서 책임 있게 수사해달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가해자 처벌 강화와 관련해서도 “나 역시 가해자 강력 처벌을 동의한다”면서 “그런데 법정형 하한을 올려버리면 피해자들이 너무 힘들어진다. 아예 기소도 안 된다. 법정형이 높으면 법원에서도 높은 수준의 증거 없으면 증거 부족하다고 무죄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무기징역까지 상한선인데 강하게 처벌하려면 왜 하한선을 건드리는가. 이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권고 양형을 상향 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현장에서 법률과 매뉴얼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또 무슨 법을 무더기로 막 바꾸는가. 너무 답답하다. 이렇게 해놓으면 아동이 또 죽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김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국회를 향해 “의원님들 더 자세한 이야기 듣고 싶으시면 국회로 그냥 저를 불러 달라. 아는 거 다 말씀드릴 테니 제발 진정하시고 이런 식의 입법은 멈춰달라”고 호소하며 글을 마쳤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