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 격변사가 한눈에 보이는 보물 제1513호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25m 길이에 공신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적은 이 조선 왕실 문서를 7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2007년 4월 20일 보물로 지정된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은 1680년(숙종 6) 8월 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功臣)’ 중 개국공신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공을 세운 훈호가 박탈되었다 복훈된 공신)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회맹연에는 참석대상 총 489명 중 연로하거나 상을 당한 사람 등을 제외하고 무려 412명이 참석했다.
회맹제가 거행된 시기와 이 회맹축을 제작한 시기가 15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때문이었다. 따라서 회맹축은 숙종 연간 보사공신이 있기까지 공신으로 지위 부여(녹훈)와 박탈(삭훈), 회복(복훈)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 자료다.
회맹축의 제목은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이며, 조밀하게 짠 옅은 황비단 위에 붉은 선을 가로 세로로 치고 그 안에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갔다. 문서의 양 끝은 붉은색과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위‧아래를 옥으로 장식해 마무리했다.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어람용 문서답게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인상을 준다. 길이가 25m로 조선 시대 문서로는 최대 규모다.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회맹축이 그것이다. 이 중 영조 때 만들어진 이십공신회맹축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1646년에 제작된 보물 제1512호 ‘20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은 국새가 날인되어 있지 않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