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 재건’ 달리는 시카고 불스, 올해는 반등할까

입력 2021-01-07 06:05 수정 2021-01-07 06:05
시카고 불스 자크 라빈(왼쪽)이 5일(현지시간) 모다센터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에네스 칸터의 슛을 블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는 미국 남자프로농구 NBA 시카고 불스 올드팬들에게 씁쓸한 해였다. NBA 역대 최고의 선수 마이클 조던을 다룬 스포츠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가 넷플릭스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불스는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버블’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짐 보일런 감독의 리더십은 엉망이었고 선수단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사령탑이 바뀐 불스의 올 시즌 시작은 나쁘지 않다. 개막전 애틀란타 호크스전을 시작으로 3경기를 내리 패했지만, 이후 5일(현지시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전까지 5경기에서 4승 1패로 반등하며 5할 승률을 맞췄다. 최종결과를 예상하긴 아직 이르지만 최소한 지난 수년간 보인 무기력한 모습과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크 라빈(25) 등 기존 에이스의 각성과 어린 선수들의 분전도 있지만 무엇보다 빌리 도너번(55) 신임 감독을 향한 호평이 크다.

달라진 벤치 ‘클러치 능력’

빌리 도너번 감독 취임을 알리는 시카고 불스 구단 홍보 이미지. 시카고 불스 홈페이지

도노번 감독이 불스에 부임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이미 오랜 세월 대학농구 무대에서 명장으로 평가받던 그는 NBA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를 2015년부터 지휘,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팀을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올려놨다. 그러나 이처럼 효율 높은 성적은 팀 구성 자체를 갈아엎으려던 구단 운영진에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필요한 높은 드래프트 순위를 확보할 수 없어서였다. 결국 도노번 감독은 선더와 헤어지고 불스를 택했다.

시즌 개막 뒤 도노번 감독은 경기 운영 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아직 선발진을 확정하지 않고 매 경기 실험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경기를 결정지어야 하는 국면에서는 적절하게 베테랑 선수들을 활용하면서 승리를 잡아내고 있다는 평이다. 경기 막판 백전노장 가렛 템플(34), 타이더스 영(32)과 오토 포터 주니어(27)를 앞세우고 여기 NBA 2년 차 주전 가드 코비 화이트(20)에 에이스 자크 라빈까지 넣어 확실한 마무리를 짓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한두 가지 방식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 특성에 따라 적절하게 수비 방식을 바꿔 내기도 했다. NBA 칼럼니스트 스테픈 노는 도노번 감독이 워싱턴 위저즈를 상대로 센터 웬델 카터 주니어(21)를 빼고 비교적 발이 빠른 영을 집어넣어 상대 픽앤롤 플레이를 저지한 장면,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마지막에 보인 수비 전술 등이 인상적이었다고 꼽았다. 전임 보일런 감독이 막판 대응능력이 떨어져 매번 뻔한 수비만 하다 역전패하던 모습과는 대비된다.

불스는 승리한 4경기에서 모두 경기종료 2~3분을 남겨놓고 근소하게 앞서던 상황에 리드를 지켜냈다. 강호 트레일블레이저스도 5일 경기에서 4쿼터 막판까지 불스와 경합하다 불스 베테랑들의 노련한 경기 운영, 막판 힘을 낸 라빈의 외곽포에 끝내 111대 108로 무너졌다. NBA에서도 손에 꼽는 슈퍼스타 데미안 릴라드가 마지막까지 3점으로 추격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각성한 에이스’ 라빈
AP연합뉴스

에이스인 자크 라빈의 각성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게 지난 매버릭스와의 경기였다. 이날 공격의 핵 루카 돈치치가 빠진 상황에서도 매버릭스는 불스를 밀어붙였다. 4쿼터 초반만 해도 불스가 9점 앞섰지만 매버릭스는 막시 클레버가 자유투를 연달아 성공시키는 등 추격해 2점차까지 따라붙었다. 제일런 브런슨은 31점을 쏟아부으며 돈치치의 빈 자리를 메웠다. 불스의 스코어러인 라빈이 상대 수비에 막혀 4쿼터 시작 이래 잠잠했던 게 불스가 따라잡힌 원인 중 하나였다.

라빈은 팀이 위기에 몰리자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기 시작했다. 종료 3분여를 남긴 상황에서 자유투 2개를 성공시킨 데 이어 결정적인 리바운드와 오토 포터 주니어를 향한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종료 2분 18초를 남긴 상황에 브런슨에게서 스틸까지 성공시켰다. 결국 라빈은 3쿼터까지 몰아넣었던 득점에 4쿼터 활약을 합해 39득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만큼은 리그 탑급 득점력에도 잦은 턴오버, 수비 실책 탓에 비판받았던 과거 모습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이었다.

도노번 감독은 “라빈을 어린 선수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코치와 팀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의미 있는 경기를 많이 치러보진 않은 듯하다”며 그간 라빈이 기대치에 비해 성장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라빈은 배우고 싶어한다. 밝고 똑똑한 선수다. 우리가 언제나 본인 손에 패스를 찔러주며 의지하지는 않을 걸 알고 있는 듯하다”라고 발전 가능성을 크게 평가했다.

동료이자 베테랑 템플은 시카고선타임스에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선수들은 신체 능력이나 기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매 경기 상대를 위협했기에 위대했다. 모든 플레이, 모든 경기에서 온힘을 다했다”면서 “라빈 역시 그런 점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는 “라빈이 그런 점을 배운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면서 “그런 정신무장을 모든 경기, 모든 플레이에서 보여준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스의 미래는 밝을까

USA투데이연합뉴스

프로 2년차인 유망주 가드 코비 화이트는 올 시즌 리딩 가드로서 경기 운영을 도맡고 있다.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한 토마스 사토란스키로부터 지휘관 역할을 넘겨받은 모습이다. 미숙한 부분이 자주 드러나고는 있지만 위저즈와의 경기에서는 어시스트 10개를 기록하며 바뀐 역할에 적응하고 있다. 프리시즌부터 픽앤롤 수행 능력도 차츰 좋아지는 모습이다.

장점인 스코어링 능력도 여전하다. 매버릭스전에서 라빈과 화이트가 합작해낸 점수는 62점에 이르렀다. 트레일블레이저스를 상대로도 21득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올 시즌 두 번째 더블더블(두 부문 두 자릿수 기록)이다. 데뷔 시즌부터 NBA 수위급 재능으로 평가받은 그가 두 번째 시즌을 맞아 얼마나 잠재력을 폭발시킬지가 불스에는 중요하다.

어린 선수 중 주목해야 할 재능은 또 있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4번픽 출신 포워드 패트릭 윌리엄스(19)는 올 시즌 8경기에 전부 나서 평균 10득점 이상을 기록,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통파 센터에 가까운 스타일이지만 최근 외곽포를 장착하려 시도 중인 빅맨 웬델 카터 주니어, 지난 시즌 부진을 이겨내야 하는 파워포워드 라우리 마카넨(23)도 새 사령탑 아래서 얼마나 성장할지를 지켜봐야 한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