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종시위 기름 부은 블레이크 총격 경찰들 ‘전원 불기소’

입력 2021-01-06 17:51 수정 2021-01-06 18:08
지난해 미국 인종차별 항의 시위의 기폭제가 됐던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총격 사건에 연루된 백인 경찰관 전원이 면죄부를 받게 됐다.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의 마이클 그래벌리 지방검사장은 5일(현지시간) 블레이크에게 총을 쏜 당사자인 러스틴 셰스키를 비롯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3명을 기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커노샤 검찰 당국은 경찰관들의 총격을 정당방위라고 봤다. 사건 당시 블레이크가 흉기를 지니고 있었고, 흉기를 버리라는 경찰 측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에 경찰들의 자기방어 권리가 성립된다는 판단이다.

블레이크 총격 사건은?
지난해 8월 23일 찍힌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 현장. 차량으로 향하는 블레이크를 경찰관 2명이 총을 겨눈 채 뒤쫓고 있다. 트위터 영상 캡처 연합뉴스

셰스키 등 커노샤 경찰은 지난해 8월 23일 ‘남자친구(블레이크)가 여기에 불법적으로 있다’는 한 여성의 신고 전화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이 여성은 도착한 경찰들에게 남자친구가 아이들과 차를 가지고 달아나려 한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시민의 휴대전화 촬영 영상을 보면, 블레이크가 경찰의 제지를 뿌리치고 본인 차량으로 이동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타려는 순간 그의 뒤를 쫓은 셰스키가 셔츠를 붙잡고 총격을 가한다. 등 뒤에서 가해진 총 7발의 총격으로 블레이크는 하반신 불수가 됐다.

블레이크가 차에 오르려는 순간 뒷좌석에는 3살·5살·8살이 된 그의 아들 세 명이 타고 있었다. 어린 아들들이 아버지가 경찰의 총에 맞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8분46초 간 목을 짓눌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블레이크 사건은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특히 커노샤에서는 시위가 거세지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자경단까지 등장했다. 자경단에 동조하는 10대 소년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2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크게 다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전히 남은 쟁점
5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검찰이 블레이크 총격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3명을 불기소 결정하자, 항의에 나선 시민들이 주 방위군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래벌리 검사장은 이날 불기소 결정에 대해 “경찰 측이 제출한 40시간 이상의 영상과 200건 이상의 수사 보고서를 검토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블레이크가 흉기로 무장하고 경찰에 적극 저항했다는 데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 측 변호사인 브렌던 매튜스도 “쉐스키가 총을 쏜 이유는 블레이크가 흉기를 들고 그를 향해 돌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블레이크가 흉기를 든 채 경찰들을 위협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영 BBC방송은 전했다. 사건 현장을 촬영했던 목격자는 AP통신에 “총성이 터지기 직전 경찰관들이 ‘칼을 내려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면서도 “당시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블레이크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조사했던 주 수사관들도 “경찰들은 블레이크의 차 바닥에서 칼을 봤을 뿐”이라며 “그들은 블레이크가 그들 중 누구를 위협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은 당시 근무 장면을 촬영하는 ‘바디캠’을 착용하지 않은 채 근무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블레이크가 실제로 경찰들에게 위협을 가했는지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없는 상태라는 의미다.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이유로 경찰관들에게만 유리한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레이크 측 변호인인 벤 크럼프 변호사도 검찰의 결정에 반발하며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더욱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검찰 발표 이후 사건 발생지인 커노샤에서는 다시 항의 시위가 시작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위대 수백 명이 검찰의 불기소 결정 이후 검찰청 앞으로 몰려와 항의 행진에 나섰다. 상점들도 약탈에 대비해 창문 등을 나무 판자로 덧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는 검찰 발표 하루 전인 4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며 500명의 주 방위군 배치를 승인했다. 불기소 결정 시 시위가 격화될 것을 예상해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시 의회도 같은 날 만장일치로 통행금지를 결의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