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자해하는 청소년

입력 2021-01-06 16:19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인 H는 자주 날카로운 물건으로 손목을 그으며 자해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조금씩 시작되었는데, 점차로 심해지며 요즘은 꽤 자주 그런 행동을 한다. 처음엔 부모는 화들짝 놀라 야단도 치고 하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행동은 점차로 횟수도 잦아지고 강도도 세져서 점점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H는 평소 부모님과 학업 관련해서 갈등이 많았다. 아빠는 자수성가한 분으로 성격이 매우 강한 분이셨다. 좀처럼 빈틈이 없고, 본인이 노력한 만큼 자녀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해했다. 2살 위인 H의 오빠와도 아빠와 갈등을 많이 겪었다. 강하게 저항하여 집을 나가거나 일탈 행동을 했다. 엄마는 이런 오빠에게 온 신경을 쓰느라 순종적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H에게는 관심을 주기 힘들었다. 두 아이가 이런 지경이니 아빠는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못한다’며 엄마를 비난했고, 엄마는 남편 눈치만 보며, H에게 ‘공부하라 압박’을 가했다.

H 우울하고 불안했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더욱 초조하고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방법으로 샤프로 손목을 그어보았다고 한다. 아프긴 했지만 통증과 함께 잠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는 아주 순간적인 느낌일 뿐, 다시 좀 더 심하게 불안하고 초조해 졌다. 이런 경험을 한 H는 이런 순간적인 느낌에 이끌려 자해를 반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해소되는 느낌도 감소되었다. 엄마도 처음엔 관심을 주었지만 이제는 지쳐서 포기한 듯 화만 냈다.

자해행동은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H의 엄마처럼 자해 초기에는 놀라서 관심을 보이다가 차츰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럴 때 ‘소거 폭발’이 일어난다. 즉 자해행동 자체에 관심(긍정적 관심이든 부정적 관심이든)을 보이면 자해 행동이 강화되는 현상을 보였다가, 자해를 줄이기(소거) 위해 관심을 안주면 오히려 자주 더욱 위험한 행동으로 자해 행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거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실제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관심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관심을 안주다가 때로는 너무 심해져서 또는 다른 이유로 관심을 주는 식으로 ‘간헐적인 관심’을 주는 것은 가장 나쁜 대처이다. 일관되게 관심을 주는 것보다도 행동을 오히려 더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많다.

그보다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일관되게 강화행동을 줄여 나가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해행동 자체가 아닌 자해가 일어나게 된 상황과 맥락을 짚어가며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어야 한다. 혹시 다시 자해 충동이 생긴다면 부모에게 반드시 미리 이야기 해줄 것을 부탁하고, 미리 도움을 청한다면 고마움을 표시하고 약속을 지키고 자제한 점에 대해 인정을 표시해 주자. 자해 충동이 일어날 때 대체 행동을 함께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얼음이나 고무줄로 손목을 감는다든지.... 그리고 상처가 심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하면서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겪게 해 자해행동에 따른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게 좋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