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은 ‘단장’의 슬픔을 추위가 막을 수 있을까. 영하 11도의 한파가 몰아친 6일 오전 산재 유가족들은 여전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27일째 이어가고 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소위를 열고 관련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여야는 오는 8일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본회의 통과까지 단식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힘든 나날 속에서도 오늘만큼은 작은 미소를 보였다.
작년 12월 11일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이래 이들에게 연말 연초는 가장 힘든 고비였다. 이 씨는 “작년 29, 30일 법안소위가 열린 뒤 31일부터 새해 4일까지 남들에겐 연휴가 내겐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아무 일도 없이 5일을 보내야 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여야가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합의를 이루며 단식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줬다. 사망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처벌 수위를 1년 이상 징역, 벌금 10억 원 이하로 정하며 법안의 기본적 틀을 잡았다. 본회의 망치가 두드려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이 씨는 “그래도 ‘9부 능선은 넘었구나’ 안도감이 든다. 법안이 많이 약해진 부분이 있지만, 법인과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포함돼 다행이다”며 말을 이었다.
오전 11시 양경수 민주노총,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단식농성장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씨는 “사망사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하는 기간을 두는 것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바로 적용해야 한다”고 법 제정까지 함께해줄 것을 양대 노총 위원장들에게 요청했다. 지난 5일 양대 노총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 재해를 낸 기업의 경영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하고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날 오후엔 경제계에서 중대재해법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김 씨는 “이번 법 제정 이후 경영자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며 “기업이 돈만 벌겠다가 아닌 일하는 노동자들도 같이 먹고 살자로 바꿔야 한다”고 전했다.
이 씨도 “한국경제의 세계 10위권으로 도약은 기업인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쳐 일궈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 노동자의 생명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데 반성하고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