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 대해 경찰의 부실 초동 대처에 질타가 쏟아지는 가운데 해당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 양천경찰서 서장이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6일 숨진 정인양에 대한 학대 신고를 여러 차례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이화섭 양천경찰서장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단체는 “피고인은 어린이집 교사와 의사 등 전문가로부터 정인양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를 세 차례나 받고도 묵살하는 등 직무를 유기했다”며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고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서장은 복수의 매체를 통해 “자성 중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게 맞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담당자 징계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판단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인양 사건에 대응했던 인력에 대해 몇 주간 조사가 이뤄졌고 감찰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황이나 절차, 매뉴얼 등을 기준으로 두고 징계 수위를 정하는 것”이라며 현장 대응 매뉴얼을 따랐는지가 중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 서장은 현행 관련 규정과 제도를 언급하며 아동학대 현장 대응의 애로도 호소했다.
그는 “미국은 차에 아동을 잠깐만 방치해도 분리 조치하도록 제도화된 것으로 안다”면서 “반면 국내는 ‘분리 조치’와 관련해 (정인양 사건 이후 마련되기 전까지) 제도적 장치가 미미하다 보니 현장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인양 사건도 이런 상황에서 현장 인력이 소극적으로,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발생했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구체적인 학대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아동을 부모와 분리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은 ‘재학대의 가능성이 급박하거나 현저한 경우’ 가해자를 피해 아동으로부터 격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격리 사유를 경찰이 입증해야 하는데 아동 학대 범죄 특성상 피해 아동이 가해 부모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고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 경찰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학대로 추정되는 아동을 부모와 분리했다가 부모의 고소로 2년간 법정 싸움을 했다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정인양 사건’이 TV방송을 통해 재조명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정부의 공식 답변요건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